피해자나 유족 등의 신고에만 의존, 현장조사 부족
‘과거사법’이 지난 5월 제정된 후 이번 달부터 위원회의 출범과 함께 당진군을 비롯한 각 시·군에서 사건을 접수하고 있으나 현행 법률과 시행령의 관련 규정이 사실상 피해자 신고에만 의존하고 있어 진상규명 작업을 더디게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이 지난 5월 제정됨에 따라 당진군 총무과는 이번 달부터 신청을 접수하고 있다. 신청대상은 희생자, 피해자 및 그 유족이나 이들과 친족관계에 있는 자, 위원회 진실규명 사건에 관해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는 자 등이다.
그러나 접수를 시작한 이후 21일 현재까지 당진군에는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사건 중 군·경이나 우익집단에 의한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후손이 좌익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극심한 피해의식으로 밝히길 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마을에서 일어난 학살사건도 상당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쉬쉬하며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신청접수를 시작한 후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지만 한국전쟁을 전후로 당진 지역에서 국가폭력과 이념갈등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본지는 2000년 11월 창간기념호를 통해 전쟁이 일어난 후 경찰들이 철수 직전 미군정 법령위반으로 수감돼 있었거나 리스트에 올랐던 지역 좌익인사들을 우강면 공포리와 송악면 한진의 바닷가로 끌고 가 마구잡이 총살에 처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또한 좌익인사들도 인민군 진주 후 우익인사 36명을 학살했으며 국군 진주 후에는 좌익활동에 가담했거나 부역에 참가한 주민 70여명이 치안대에 의해 우강면 송산리 전파관리소 부근에서 집단 학살당한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알려진 사건은 전체 사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세대들의 공통된 진실이다.
전쟁 이후 수 십년간의 냉전체제 속에서 이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역사에 기록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역의 향토사에서 전쟁 전후는 결국 기록되지 않았고 학살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나 가족들의 신고에 의존한 지금의 진상규명 노력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당진군은 신고만 접수할 뿐 구체적인 조사는 정부 산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 정리위)에서 맡고 있다.
그러나 ‘과거사 정리위’의 현 체계와 인원구성으로는 확인된 내용만 사건 수 820건, 학살된 인원수 약 40만 명, 전체 민간인 학살 추정치 100만 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실을 조사하기에 무리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의 김구현 담당자는 “일선 시·군이 신고만 접수하고 ‘과거사 정리위’에서 조사를 맡고 있으나 조사위원이 131명에 불과해 진상규명에는 한계가 있다”며 “경로당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청취하는 등 바닥작업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