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군의 지역사회 개발 활성화를 위한 고유 브랜드 사업인 「우리 마을 사랑운동」은 1997년 시작됐다. 전년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이 사업은 당시 현실적 분위기에 맞물려 태동됐다.
노태우 대통령의 군부정권을 끝으로 일기 시작한 민주화 바람은 사회적 기강마저 흔들어 공동체 의식을 기대할 수 없는 시기였다. 한보철강에서 빠져나온 돈의 흥청거림, 70년대 주민과 함께 마을 발전을 주도했던 새마을 일꾼들이 마을을 빠져나와 회원끼리 떠도는 행태, 「부역」이란 이름으로 시행하던 마을공동작업의 실종, 잡초가 뒤엉킨 농로, 봄바람에 펄럭이는 밭두렁 산기슭의 폐비닐은 당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래서 다시 새마을 일꾼들을 마을로 돌려보내어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주민과 함께 공동체 의식을 환원시키려는 민선 지자체 초기의 의욕에 함께 실어 구체적인 시도를 한 것이었다.
어차피 지역사업비로 나가는 예산을 주민이 똘똘 뭉쳐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을부터 상사업비 명목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새로운 재원이 뒤따르지 않아도 가능한 사업이었다.
공동체의식, 미풍양속, 환경, 소득유발 등 4개 분야 20개 단위사업에 80여개 체크포인트를 평가하여 읍면 구별 없이 마을별 총점순위로 시상했다.
초기 계획에 따라 6∼7년차까지는 3억~4억의 예산 투입으로 약 40억 정도의 효율이 있다는 전문성을 가진 타부서의 분석이 있었고 그동안 6개 시·도 40여개 시·군에서 단체 견학과 교육을 받고 갔다.
수년간 지켜본 도와 중앙에서는 70년대 이후 전국에서 유일무이하게 성공할 민·관 파트너 사업이라고 평가를 내려 여러 번에 걸쳐 발표회를 주선하고 연수원 교육 자료로 이용했다.
그런데 모든 것은 상승곡선과 하향곡선이 있는 것 같다. 상사업비에 대한 주관적 욕심, 심사의 불만, 지역 이기주의, 평가에 대비한 기형적 요령확산, 마을간 선의의 경쟁에 일부 읍·면의 적절치 못한 관심과 간섭, 성과의 과실에 대한 직위간 대립 집행부의 주관적 리더십 감소가 사업진행 7년차부터 뚜렷이 나타나 침체기를 맞은 것이다. 즉 승화 발전을 위한 업그레이드 단계를 실기한 것이다. 이런 정도는 새로운 시스템 확립으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예산 최고 책임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자타가 긍정적 평가를 하듯이 이 사업은 상당한 효율이 있고 발전 가능성도 무궁하다. 당진군 총예산의 천분의 일 남짓한 사업비로 삶의 주변을 명실공히 변화시킬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10년째 지속해 올 수 있었다. 이런 사업을 아무 지역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관단체는 물론 행정과 의회, 시민사회단체, 언론, 주민 등 어느 한 곳의 협조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벤치마킹 할 의사가 있는 곳은 많아도 쉽게 못하는 것이다. 이 운동으로 새마을 일꾼들이 할 일을 갖게 되었고 10년 전보다 분명하게 달라진 게 있다.
형식적으로나마 노인잔치, 효도관광 등 여러 형태로 경로사상이 함양되었고 도로와 생활 주변에 꽃과 나무를 많이 심어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또한 오염취약지가 현저히 줄었고 이웃돕기 특히 사회복지 시설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사업의 실무선에서 그동안 지켜본 소회를 밝히면서 또 다른 제의를 하고 싶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세월을 추진해왔다. 어떻게 하고 무엇이 중요하다는 것은 거의 인식됐다.
마을 안에서 60세 이상 노인이 술상을 나르는 현실에서는 전체 250여 마을 중 지금의 이 사업을 원만하게 추진할 곳은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러므로 이 사업을 원안대로 추진할 수 있는 60-70개 마을은 더 한층 개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앞 선도차로 보내고 미처 편승하지 못한 마을은 뒤차를 준비하여 사회복지차원으로 후속대책을 세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것이 70년대 기초마을, 자조마을, 자립마을로 나눠 선별 발전시킨 선구자들의 혜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