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통계학자는 머리에는 뜨거운 오븐을 뒤집어쓰고 발은 얼음물에 담그고서도 “음 평균 온도가 아주 적당해, 아주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서민들이 아무리 나라 걱정 해봐야 정작 자신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게 아니다. 걸핏하면 정부나 재벌, 언론이 추앙하는 그 국익이라는 과실은 항상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먼저 따먹게 되어 있다. 국익이라는 것은 일종의 신기루나 환상이 아닐까. 황우석의 경우를 보자면 어떤 면에서는 마약의 구실을 하는 것같다.
예를 들어 우리의 국익을 위해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는 한·미FTA는 대기업이나 대자본에겐 새로운 기회와 이익을 안겨줄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노동자나 농민 등에게는 신자유주의의 고통을 안겨줄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이미 한 차례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양극화의 심화를 가져다 준 ‘글로벌 스탠더드'의 참혹한 결과를 보았다. 한·미FTA가 설혹 전체 국익의 계량적 증가를 가져다준다고 한들 대다수 서민들이 그 국익의 혜택을 볼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익이라는 깃발을 휘두르며 한·미 FTA 협정 타결을 위해 폭주하고 있다.
정부나 국방부는 평택의 주한미군 기지 이전도 우리 국익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그 ‘뜬구름 잡는 국익'이 뭔지 혹시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국의 필요에 의한 이전에 드는 비용을 우리가 거의 부담해야 하고 기존의 미군기지의 환경정화 비용까지 떠맡게 됨으로써 우리 국민들의 혈세를 쏟아 넣게 생겼다. 평택 미군기지 때문에 당장 자신의 땅에서 내몰리는 우리 국민들은 또 어떠한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국민에게라도 가해지는 억압이 과연 정당한가? 우리 국민 누구나 그 ‘소수'가 될 수 있다.
5월 31일에 있었던 지방선거는 ‘지나친 나라 걱정'의 절정이라 할 만했다. 박근혜 대표를 걱정하는 마음이 자신이 사는 지역의 행정을 맡을 인물을 뽑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지역의 행정을 감시하고 지역의 현안을 심의할 구의원, 군의원을 뽑는 일이 정권 심판과 어떤 연관이 있단 말인가? 나라 걱정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가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묻지 말고 자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거창하게 나라 걱정을 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절실하다. 농민으로서의 자각, 노동자로서의 인식, 무엇보다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주인 의식이 가장 필요하다.
국익을 위해서라는 휘황한 거대 담론에 현혹되지 않고 농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이 땅의 주인으로서 한·미 FTA 협정이 과연 나와 내 가족의 생존과 생활에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비판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정말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에 돈 대주고 들러리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냉철히 판단해 보아야 한다.
제발 나라 걱정 좀 작작하자.
오마이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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