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주일부터 여유있는 시간을 달래기 위하여 선경도서관(鮮京圖書館)엘 들려 책을 읽고 있다.
읽는 동안 깊숙한 감정에 젖어들어 한참동안 감정을 다스리게 됐다. 다름이 아닌 ‘고 김재규(당시나이 56)X 파일’을 읽으면서부터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는 다른길이 없었다.
더 이상의 길이 없었다. 박(朴正熙)대통령은 나개인에게 있어 사적으로 친형제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나의 개인적 정분을 야수와 같은 마음으로 끊었다. 나는 다음부터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나의 생명과 독재체제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각오하였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었고 그 희생을 줄이는 것이 나의 대의였다.
생명은 고귀한 것이며 똑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보다는 한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킬 수 밖에 없었다.
나를 만일 신이라고 부를때는 자유의 수호신이라 부르겠지, 나를 만일 사람이라고 부를때는 자유대한의 국부라고 부르겠지. 나 내목숨 하나 바쳐 독재의 아성 부너뜨렸네. 나 내 목숨하나 바쳐 자유민주주의 회복하였네. 나 사랑하는 3,700만 국민에게 자유를 찾아 되돌려 주었네 만세. 만세. 만만세.
국민여러분 나는 민주회복을 하고 간다. 자유는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것이 까닭없이 병들어 말살됐다. 이것을 회복하는데 이렇게 많은 고귀한 희생이 뒤따랐다. 다시는 이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 손으로 애지중지 키워야 한다. 자유의 물이 흐르는 강을 가로막고 있는 제방을 내가 제거해서 흐르게 했다. 이제 도도히 자유의 물이 흐른다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방임과 무관심 속에서 장애요인이 생기는 것이다. 잘 관리하고 보살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시 병들고 장애물이 생긴다. 자유가 속박됐을때 우리는 많은 고생을 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해 놓았다. 기쁘게 간다. 국민 여러분은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우고 편안히 사시기 바란다.
그는 사감이 없음에도 이런 희생을 일으켰으며 자기를 아껴주던 대통령을 살해한 죄는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자살을 하지 않은 것은 부하들의 사형만은 면케하기 위해 싸우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김재규를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대역원흉(代役元兇)이라고도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억압당한 자유민주주의의 희생을 위해 혁명을 기도한 의사(義士)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사건발생 후 2백 7일만인 1980년 5월 24일 오전11시 교수형을 받고 국군통합병원으로 이송, 경기도 광주시 오모면 능평리 남한산성 공원묘원에 고요히 잠들었으나 일부 세인들은 보이지 않는 이국에 나가 살고있나를 의심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