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옥 당진읍 읍내리, 글고운주부독서회

유난히 더디게 오는 가을을 기다리던 중에 도서관 모임에서 ‘배려’를 만났습니다. 당신의 이야기였습니다.

승진발령이 난 줄 알고 좋아했는데 사실은 정리 해고 예고편이었더군요. 철혈상무는 상실감에 빠진 당신을 구해 주는 조건으로 당신의 프로젝트 1팀을 공중분해시키는데 협조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트로이 목마가 되라는 뜻이었죠. 이 부분까지 읽었을 때는 주변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뻔한 스토리의 전개처럼 보였습니다. 해고될 뻔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기사회생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예요. 그런데 점점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착잡한 발령도 부족하여 별거 중이던 아내마저 “지금까지 살면서 뼈저리게 후회하는 게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결혼한 것”이라며 아주 헤어질 것처럼 짐을 싸서 보내라고 했을 때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저는 잠시 당신의 아내가, 그리고 당신의 딸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깥 일에만 매달리고 매사에 이기적인 남편을 둔 여자는 외로웠을 것입니다. 이기적인 아빠와 외로운 엄마를 바라보는 딸 또한 슬픔이 컸을 겁니다. 그러나 트로이 목마여, 당신은 사실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발령받은 프로젝트 1팀에서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시선으로 사람을 대하기 시작했거든요. 늘 다른 사람의 단점을 찾아 공격만 하고 그것을 당신의 발전의 기회로 삼아 온 당신의 놀라운 변화가 시작 된 것입니다. “잠시 말을 삼키고 남들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먼저, 사람들의 환환 표정이 보였다. 전에는 자신의 공격에 인상을 찡그린 사람들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변화였지만 당신의 새로운 모습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또한 당신 속에 있는 따뜻한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수다쟁이 아줌마이거든요. 지금까지 나의 수다 때문에 즐겁고 위로가 되었던 이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 짜증스럽거나 상처가 된 이들이 더 많지는 않았을까 하고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변화된 마음의 눈에 팀원들의 환한 표정과 장점이 보이면서 어느덧 당신은 당신 본연의 임무(슬픈 트로이 목마로서의)를 잊고 그들과 한마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철혈상무의 지시와는 정반대되는 팀 살리기에 전력을 기울인 것이죠. 보세요. 청년 트로이 목마여, 당신이 사실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이 아줌마의 예감이 딱 맞았죠?

당신과 당신의 팀 동료들은 턱없이 높은 매출 커트라인에 도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어려움도 겪게 되지만 점점 하나가 되더군요. 그러면서 당신은 목표 달성 보다도 훨씬 귀한 선물을 얻게 됩니다.�

배려의 세 가지 조건을 깨닫게 된거죠.

행복의 조건 | 스스로를 위한 배려 :

솔직하라!

즐거움의 조건 | 너와 나를 위한 배려:

상대방의 관점으로 보라!

성공의 조건 | 모두를 위한 배려 :

통찰력을 가져라!

아시지요? 이렇게 귀한 깨달음이 당신 혼자서 터득한 것이 아님을 말이예요. 거기에는 당신의 동료 요술공주, 직업조문객, 조구라, 그리고 공자왈. 각각의 개성이 당신의 눈에 장점으로 보이고 또한 그들이 각자의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행복한 표정일 수 있는 여유가 상대방을 위한 배려로부터 출발했음을 어느덧 당신도 아신거죠. 그리고 조구라가 살짝 당신들을 곤경에 빠뜨릴뻔하긴 했지만 그를 통해서 또한 깨달은 것이 있죠? 뭐니뭐니 해도 당신에게 가장 큰 본을 보인 사람은 공자왈 아닐까 싶네요.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그로 인해 도와주려고 한 친구가 곤란해질까봐 “사람은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닙니다.”라면서 친구를 먼저 생각하는 공자왈은 정말 곁에서 모시고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공자왈은 인도자의 배려 넘치는 가르침을 받았다지요?� 깨달음은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실천자는 또 다른 실천자를 낳는 아름다운 어울림이네요,�

그리하여 행복한 실패자로서 동료들과 함께 기사회생한 트로이 목마여! 저는 이곳에서 현명한 당신의 아내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떠난다고는 했지만 늘 당신의 주변에서 당신이 부르기를 기다리며 우렁이 각시 노릇을 한 당신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찬바람 부는 당신의 언저리에서 딸을 감싸안고 결국은 눈치 없는 당신이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당신의 집에 부는 온갖 바람과 맞서서 기다리던 당신의 아내야 말로 당신을 가장 배려해 준 이가 아닌가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철 안나는 사람이 많다지요. 그런데 삼십대 초반의 시기에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된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군요.

어느덧 창문을 닫지 않고는 쌀쌀한 기운을 막을 수 없는 가을입니다. 당신으로부터 배려를 선물 받은 저 역시 청년 위에서 혹은 철혈 상무에서 공자왈로, 인도자로 거듭나는 삶을 살기 위하여 주변을 살필 것입니다. 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