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한국인권위원회가 학생체벌을 금지하도록 교육부에 권고했고 교육부는 신중한 검토 끝에 이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힌 일이 있었다. 여론조사 결과 체벌이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판단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시대가 인권의 시대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전통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어야 했던 여성, 아동 또는 노동계급의 인권이 존중되고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기사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이 활발해진 이후 여권은 놀라운 속도로 신장됐고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두려울 만큼 우렁차게 경영자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얻어터지고 기합받고 나서도 저항 한마디 못하는 계층은 이제 아동과 청소년들 뿐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을까? 머리 한번 쥐어박힌 학생이 핸드폰으로 경찰을 불러 선생님을 고소하는 것으로는 학생의 인권보장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일까? 국가인권위원회가 학교의 체벌을 금지하도록 권고한 일은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는 일이고 이제 교육계로서도 그 권고를 무겁게 받아들일 단계에 와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교육선진국 중에는 체벌을 법률로 금지함은 물론 학생의 머리를 한번 쥐어박는 일 만으로도 엄청난 책임문제가 발생하고 문책논의가 분분해지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안다. 인권운동의 종주국이라는 명예를 지키려는 의도일 수도 있고 교육문화가 잘 발달되어서 체벌 없이도 훌륭한 교육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일 수도 있으리라.
체벌이 최상의 교육방법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항상 웃는 낯으로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도 좋은 교육을 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교육자들 모두의 공통의 염원이기도 하다. 다만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한 것처럼 체벌도 법으로 금지해서 없앨 일은 아닌 것이다. 체벌이 없어도 좋은 교육을 가꿀 수 있도록 교육여건을 개선하면서 끈기있게 기다리고 신중하게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플라톤은 체벌에 관해 두 가지의 중요한 원칙을 말했다. 첫째 체벌의 목적은 잠자는 아이에게 각성을 주는데 있다는 것이다. 등에가 잠자는 소를 귀찮게 해서 깨우듯 가만 두면 잠자고 있을 아이의 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 각성의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곧 체벌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절대로 체벌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깨워도 역량이 신장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은 무용하고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신념에 찬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제 체벌을 등에에 비유할 수 있는 상황은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체벌 긍정론자들은 체벌도 하나의 유용하고 유의미한 교육수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인간주의적인 교육의 측면에서 보면 결코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인 것이다. 이제는 교육적 체벌을 따지는 대신 체벌하지 않고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모색하는 자세가 더 요청되는 시점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체벌이 불가피한 형편이라 할지라도 체벌의 방법에 관해서는 아주 진지하고 신중한 논의와 선택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교육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체벌인가를 항상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즐겨썼던 달초(撻楚)는 이 시대에도 유용한 체벌의 모범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사용 빈도를 최소화하고 방법도 아주 신중해야 할 줄로 안다.
인권은 소중하고 값진 것이지만 인권 일변도의 주장이 학교교육을 황폐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인권을 아울러 생각하는 균형잡힌 오늘의 교육이 건강한 미래사회를 보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올해는 꾸중이나 약간의 체벌도 고맙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고받는 교육사랑의 마음들이 학교와 가정에 넘쳐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