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낭소리> 80 평생 흙을 일구며 살아온 한 노인이 늙은 소와 공감하는 모습을 통해 가축에 대한 농부의 감수성을 그려낸 영화다.

우리네 어르신들은 평생 흙을 일구며 살아오면서 가축과도 공감하는 ‘감수성’을 잃지 않았다.

최근 충남지역 축산농가들과 축협·낙협 직원 등이 연루된 가축재해보험 사기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가 나왔다.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근 멀쩡한 소를 병든 소라고 속여 가축재해보험금을 챙긴 혐의(사기 등)로 모두 300여 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충남지역에서 부당하게 보험금을 수령한 금액은 약 102억여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중 당진축·낙협이 86억여 원(낙협 56억 원, 축협 29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본지 제999호 기사 참고)

멀쩡한 소를 죽인 이유는 단 하나, 가축재해보험금을 타먹기 위해서였다. 당진·부여·논산·예산·아산·천안 등에서 지난 2년여 동안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살이 잘 찌지 않아 사료만 축낸다는 이유로 멀쩡한 소들이 축산농민들에 의해 강제 도축됐다. 그런데도 누구 한 사람 죄의식을 갖지 않았다.

소 주인들은 가축재해보험에 가입된 멀쩡한 소에게 안정제를 맞춘 뒤 쓰러뜨렸다. 이어 병든 소로 꾸민 수의사의 허위 진단서, 그리고 매매계약서를 첨부해 보험금을 신청했다. 소 한 마리당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350만 원을 받았다. 모 가축주의 경우 이 기간 동안 무려 2억여 원의 보험금을 챙겼다. 축주들은 죽은 소들이 아무런 이상이 없는 만큼 제값을 받고 다시 판매, 이중으로 수익을 챙겼다. 경찰은 보험금 부당 수령액이 억대에 이르는 축주 4명을 구속했다. 지난 4일까지 충남 일부 지역에서 사기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축산주는 258명이다.

가축주-소 운반상-수의사-축협

낙협 직원 및 조합장까지 한 통속

소 운반상은 한 마리당 10만 원씩 받고 멀쩡한 소를 쓰러뜨리는 일을 돕고 도축장까지 운반해 줬다. 수의사는 소를 진단하지도 않고 사진만 보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후 수수료를 받았다. 소운반상은 19명, 수의사는 7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축협·낙협의 가축재해보험 담당 직원들은 소 사육농가들을 대상으로 “낸 보험료의 두 배 이상을 타먹을 수 있게 해 주겠다”며 오히려 불법을 권유했다. 충남 일부 지역에서 이 일로 불구속 입건된 축협과 낙협직원은 18명에 이른다. 특히 구속된 당진축협 전·현직 직원 2명은 보험금 청구서류 위조를 돕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소 사육농가들 몰래 통장을 만들어 보험금을 빼돌리고, 보험료를 부풀려 청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무려 7억2000만 원을 가로챘다.

조합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진낙협 조합장은 자신이 키우는 소를 통해 수천만 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부여낙협 조합장은 부여낙협 명의로 직영하는 소를 이용, 같은 방법으로 수천만 원의 보험금을 챙겼다.

경찰에 따르면 보험에 가입한 대부분의 축주들이 보험사기를 벌였다. 그런데도 입건자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수사당국이 처벌기준을 ‘일정 금액 이상’으로 대폭 완화했기 때문이다.

양심이 없는 사람들의 사례와 마주하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이다. 폭등한 사료값 등으로 어려워진 농가현실을 도외시하자는 게 아니다. 내 손으로 키운 소를 넘어뜨려 죽이고도 가책조차 없는 양심 없는 사람들을 만들어 낸 ‘양심 없는 사회’가 두려워서다.

정신을 차리고 우리 곁에 소리 없이 우는 이들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는 감수성이 필요한 때다. 그 대상은 대부분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겠지만 때론 가축일 수도 있고, 마당 앞 나무 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