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지나간 역사를 알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견한다. 모든 존재는 파괴되고 소멸하는 것임을 현재의 삶 속에서 폭넓게 꿰뚫어 안다. 중생의 길고 긴 역사를 관찰해보니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이 태어나고 병들고 늙고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객관 대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내면적으로 망상에 매달리는 것에서 벗어나 독화살과 같은 번뇌를 없애버렸으니 생과 사의 문제에서 초래되는 갈등에서 자유를 얻었다. 그래서 나는 부처라고 말한다.”(별역잡아함경)

부처님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경험에 의해 확보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말하면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믿고 그 힘을 숭배하거나 복종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불교는 맹목적으로 믿고 매달리는 신앙의 종교가 아니라 납득되었기 때문에 믿는 신해(信解)의 종교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행동에 옮기는 신행의 종교다. 부처님은 ‘와서 믿으라’고 말하지 않고 ‘와서 보라’거나 누구라도 ‘와서 이 법을 보라’고 했다.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날, 미혹한 중생들 하나하나가 자기 자신이 부처임을 확인함으로써 깨달은 사람 되도록 일깨워 주고 중생들이 이루고자 하는 이상향의 사회, 즉 극락정토의 현재실현을 위해 이땅에 오신 날이다.

부처님은 왕위를 버리고 오로지 태어나고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고통과 온갖 고뇌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하려는 일념의 원력으로 철저한 수행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완전에 이르는 길, 부처가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개인적인 성불을 통하여 함께 더불어 사는 아름답고 행복으로 충만한 정토세계 건설을 제시한 것이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내가 가장 존귀하도다. 온 세상 모두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으니 이를 내가 모두 편안하게 하리라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 외치신 탄생게(誕生偈)가 바로 그 선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부처님과 똑같이 절대적이고 무한한 능력을 가진, 유일무이하고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 존재를 부정하거나 상해하거나 핍박하거나 죽여서는 아니된다.

부처님 자신은 스스로의 수행을 통하여 이것이 우주만법의 근본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편안함과 즐거움이 가득찬 세계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중생이 고통을 받는 것은 자신 스스로가 완전하고 온전한 존재임을 모르기 때문이며 부처님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일깨워주고자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불교가 지향하는 바와 존재가치, 존재이유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에 회자되고 있는 인권문제나 사회문제, 복지문제, 자연환경 보전의 원초적 근거이다. 적극적인 포교, 교육을 통하여 모두가 이같은 사실을 깨닫게 하여 스스로가 고통이 진정한 고통이 아님을 알게 하고 무쌍한 변화, 바로 연기(緣起) 속에서 생겨나고, 태어난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근본사실을 체득케 하는 것이다. 고통이 오는 근본 자체를 알고 나면 즐겁고 편안하고 행복한 삶이 열릴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것이 있어야 저것도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도 그에 따라 생겨나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따라 없어지게 마련이다.”(중아함경)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아 우리들에게 가르친 중요한 내용이다. 나홀로 살 수 없는 인생, 이 세상의 존재와 현상 모두가 서로간에 무수한 관계 속에서 함께 더불어 나누고, 베풀고, 주고받는 존재 법칙인 연기법칙, 인연법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관계된 것들의 주인, 주인공이 되어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동참할 때 행복은 보장된다는 가르침이다. 독일의 유명시인 릴케는 ‘광휘속의 붇다’라는 시에서 “그대 속에는 이미 태양을 뛰어넘는 일들이 시작된 모양이네”라고 부처님을 찬탄했다. 영국의 세계적인 철학자 버트랜드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글에서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이 세상에 가장 높게 존경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일지라도 알리지 않고 모르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부처님은 깨달은 내용을 고통받는 인류와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기 위하여 전도를 떠난다. 아무리 좋은 다이아몬드의 값진 보석도 무지한 사람이 보면 그저 그런 돌덩이에 불과한 것이요, 지혜인의 눈으로 보면 그 가치가 확연해지듯이 우리는 진리에 대하여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이웃의 고통에 대하여 당당하게 마주서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전하여 전도몽상에서 깨어나 누구나 구원의 실상임을 깨달아 삶의 환희로움으로 충만하게 해야 한다.

“모두의 이익과 발전을 위하여 화합하라. 물과 기름처럼 떠돌지 말고, 물과 우유처럼 화합하라”(열반경)

마음은 일념이 되게 하고 생각을 같이하고 이익에 있어서는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공공의 이익이 이루어지면 개개인의 이익이 저절로 챙겨지는 것인데 각자 개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전투구하면 아무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고 무지한 중생의 삶으로 아집과 편견과 의심과 분열로 항상 남의 노예로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자신을 위하여 조금 쓰고 남을 위하여 많이 베풀고 자신에게는 철저하고 남에게는 너그럽고 인자하라. 그러면 저절로 화합은 이루어진다.

화합 대통합은 자유와 행복한 삶을 보호하는 큰 호법신장이다. 화합이 없으면 행복과 자유도 없고 살아도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어지게 마련이다. 깨어진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듯이 화합이 없으면 아무런 발전과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

부처님 오신 날의 참뜻을 되새기면서 온 세상이 지금 이 순간 기쁨과 감사함으로 충만한 지상천국 지상극락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