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경계
김중회
은수교회 담임목사
바다보다 육지가 더 낮은 나라 네덜란드에는 넘쳐오는 바닷물을 막아 사람의 땅을 지켜내는 둑이 있다. 이 둑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행복과 안녕을 지켜주는 ‘황금의 경계’라 불리운다.
인간의 삶이 연출되는 곳에는 예외없이 경계선이 있게 마련이다. 나라간에는 국경선이 있고 나라안에는 도계, 군계, 면계 등 경계선이 있으며 개인의 땅에는 소유권이 미치는 경계가 있다.
생각컨데 사람은 금을 긋고 사는 동물인 것 같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땅엔 금이 없건만 지적도를 들여다 보면 모든 땅에 거미줄 같은 금을 긋고 번지를 매겨 소유자를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인간의 내면에 혹은 사람사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무형의 경계선들이다.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안에 꼭 있어야 할 윤리와 도덕의 기준들은 공부상에 소유권을 나누어 금 그은 무형의 지적도이다.
공직자 윤리, 스승이 걸어야 할 사도, 종교인들이 넘어서는 아니될 계율, 기독교 목회자들이 지켜야 할 목회 윤리는 경계선 근처에 얼씬거리는 것 조차도 엄히 조심해야 할 데드라인(사선)이다.
교회에서는 교인과 목회자 사이를 양과 목자로 비유하고 있다. 양은 목자 없이 살 수 없는 동물이다. 그래서 양은 목자의 신호와 인도에 따라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삶을 유지하고 다른 목자의 신호나 지시는 따르지 않는다. 오늘날 다른 목자의 양을 탐내며 도적질하는 목자 아닌 도적이 목자의 탈을 쓰고 교회에 앉아 있다. 목자와 양 사이에, 목자와 목자 사이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황금의 경계를 직시할 수 있는 눈을 떠야 한다.
조금 눈을 돌려보면 체세포 복제에 의한 송아지가 보인다. 생명복제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와 같은 복제동물의 출현은 머지 않아 복제인간의 출현을 높은 소리로 예고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문제로 끝날 일이 결코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 훼손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인간의, 신권에 대한 월권망동은 하나님과 대충돌사고가 일어날 중대사건의 암시이다. 그리고 이 충돌사건의 결말은 인류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대 재앙으로 나고 말 것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인간들이 하나님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축대를 쌓아 올리다가 하나님의 대항에 부딪히게 되는데 축대의 각 층마다 일꾼들의 언어가 달라져 실패하고 만다. 각 민족의 언어가 달라지게 된 원인이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끼리 무슨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이때 쌓아올린 축대이름이 바벨탑이다.
지금 유전공학자들이 쌓고 있는 탑의 이름은 무엇인가? 사람의 행복과 안녕질서를 지켜주는 경계선을 황금의 경계라고 부를 수 있다면 우린 그 선안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하나님의 하셔야 할 일은 하나님께 맡겨둔 채 우리 인간들은 인간들이 해야 할 일만 열심히 하자는 말이다.
지금도 인류 공명심 높이기 바벨탑을 견고하게 쌓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차제에 인류멸망의 악역을 무슨 사명이라도 되는듯 떠맡은 유전공학, 생명공학의 탈선 연구자들에게 황금의 경계를 지킬 것을 엄숙히 천명한다.
정부도 인간복제 같은 무모한 행위가 자행되지 않도록 엄한 규제를 시행해야 하며 모든 양식있는 사람들과 연계하여 종교계에서는 확실한 태도로 대처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