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황해경제자유구역 송악지구에 오곡리를 비롯한 부곡1·2리와 한진2리, 중흥리, 월곡리, 고대리, 복운1·2리 등이 포함됐다. 이들 마을 주민들은 연말을 앞두고 새해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경제자유구역이 추진된다면 평생 살아왔던 터전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조상대대로 살아왔고 자식들이 커왔으며 손주들이 뛰어놀던 고향의 추억을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묻어야 하는 심정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지난달 29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이곳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 보았다.
월곡리에 살고 있는 주민 생활이 궁금해 월곡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김옥순(73)씨 댁을 김씨와 함께 찾아갔다.
동물(소나 돼지) 키울 여력도 없어 작은 개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김씨는 조그만 대문을 지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김씨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좁은 부엌이 나타났고 그 옆으로 작은 방이 보였다.
김씨는 열다섯살 때 남편 최병만(81)씨에게 시집을 왔다. 최씨는 월곡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밤새 기침으로 잠을 잘 못잤다는 최씨가 이불에서 일어나 앉았다. 방안은 찬 공기가 감돌고 방바닥은 차가웠다.
노환으로 몸이 다소 불편한 최씨는 일제시대때 징병당해 2년을 넘게 전쟁에 참가했으며 해방이후 6.25전쟁에도 참가했다. 얼마전 참전용사로 인정받아 지난해 봄부터는 매월 7만원의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마을이 수용된다니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여. 수용된다는 이야기도 몇일전에 들어서 아직은 대책도 없네 그려.”
젊은 시절 땅 한평 가진 것 없었던 최씨는 인근 염전에서 하루하루 품을 팔며 부모님과 처를 먹여 살렸다. 그렇게 어렵게 일하며 간신히 돈을 모아 마련한 논 십여마지기가 전재산이다. 벽 한쪽에 최씨의 고희연때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최씨는 “자식들이 사는게 힘들어서 환갑은 그냥 넘기고 고희연때 찍은 사진”이라며 “사진관에서 찍어준 사진”이라고 말했다. 최씨부부는 7남매를 두고 있다고 했다. 지난 세월 먹고 사는게 힘들어 자식들 공부도 남들처럼 제대로 시키지도 못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지들 밥벌어 먹고 사는데 급급한데 기댈 수도 없어. 이곳에서 살다 죽길 바랬는데 그러지도 못하게 됐네 그려.”
최씨는 그저 한숨뿐이었다. 김옥순씨가 방과 문하나 사이에 있는 부엌에서 커피를 내왔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응시하는 최씨의 눈가에 주름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김씨는 방에만 누워 있던 남편 최씨가 안쓰러웠는지 마을회관에 가자며 일으켜 세웠다.
“마을 회관에 가서 이웃들하고 이야기도 좀 허구 그러슈. 추우니까 옷 든든이 입구...”
마을 회관에 가는 길에 현대제철 공장이 보였다. 최씨는 현대제철 쪽을 가르켰다.
“옛날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인근에는 염전도 많았지. 젊었을 때 여기 염전에서 하루 하루 품을 팔았는데 다 논으로 변했어. 이제 여기도 수용되면 다시 보기 힘들겠구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