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 령 삼성생명 당진지점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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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세기에 한번쯤 나올 희귀한 천재라는 격찬을 받았던 번역가이자 수필가였던 전혜린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소개하며 다시금 나의 잠자고 있던 감수성을 깨워볼까 한다.

전혜린은 일제 시대 중반 부유한 관리의 맏딸로 태어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아버지가 사다주는 책을 마음껏 읽으며 명문 경기 여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워낙 여학생이 드문데다 도통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거리낌 없는 행동, 경탄할 만큼 예리한 두뇌 때문에 그녀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1955년 가을, 법학을 그만두고 문학 공부를 위해 한국인 최초로 독일 유학을 떠난다. 뮌헨의 슈바벤, 내리깔리는 축축한 안개사이로 오렌지색 가스등이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그곳은 곧 전혜린의 정신적 고향이 되었다. 미지의 세계에서 가슴 뛰는 마음을 그녀만의 감성으로 써내려간 글을 읽으며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들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사람의 마음을 뚫어보는 듯한 강렬한 눈빛, 짧고 간결한 문체. 인생을 달관해 버린 승화된 내면의 고뇌들이 문장 곳곳에 묻어나는 너무도 아름다운 글들� 그 속에 생에 대한 강한 열망과 집착이 있던 그녀는 또한 여성 법학도요, 독일 문학가로서 대단한 삶을 살았던 만큼 내면의 자아 또한 그 이상의 크기로 그녀를 힘들게 한 듯 하다.

독일에서 귀국한 전혜린은 여자는 강단에 세우지 않는다는 당시의 완고한 전통을 깨뜨리고 스물다섯의 나이로 서울대학에 출강하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그것도 개혁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 사회의 편견과 곱지 않은 시선들과 싸우며 그녀만의 세계는 더욱 철옹성이 되어 가지는 않았는지. 결국 그녀는 권태와 광기 사이를 오가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광기일 만큼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 그러나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권태로운 일상� 그녀가 자살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리라는 느낌은 그녀의 글들 속에서 느끼며 나 역시 그 속에 잠식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불타오르는 젊음의 흔적만을 고스란히 남기고 사라진 영원한 감성의 보헤미안 전혜린.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하루가 소중하고 한 시간이 영원한 것처럼 열정을 끊어 오르게 한다. 가슴 밑바닥 가라 앉아있던 이름만으로 눈부시던 청춘이란 친구와 악수하게 한다. 이제 그녀의 글 한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만큼 나는 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남에게 보여서 부끄러운 사람은 마약 밀매상적인 요소가 있다. 대낮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