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엄마는 88세에 돌아가셨는데 팔팔했다기 보다는 칠칠치도 못하게 사시다 가신 것 같다.
엄마가 사신 곳은 범난골, 오리골, 동작골, 안골 등 열두 골의 물이 모여 만든 저수지 윗동네 - 돌무더기 억새풀이 많아 禾谷인지, 산골짜기의 골이 깊어 項谷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골짜기마다 빼곡히 들어찬 기름진 田畓이 많아 禾谷일 것이다.
아무튼 울엄마는 산다랑이 논배미, 비탈밭 일구며 사셨다. 한때는 서울 자식집에 얹혀 사시다가 아버지랑 시골로 줄행랑을 치셨다. 울엄마의 장기는 대단하다. 아들딸 팔남매를 딸 낳고 아들 낳고 딸 낳고 아들, 그게 나다. 세 살 터울로 아들 넷 딸 넷을 낳으셨으니 장관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풍성한 엄마젖을 먹고 홍역(紅疫)을 거뜬히 이겨내며 시오리길 뜀박질로 학교 다녔다. 그런데 그만 장례식 중 엄마의 젖을 보고 까무러칠 듯이 놀라 격한 울음을 터뜨렸다. 어렸을 적 그토록 휘황찬란하고 풍성하기만 하던 젖무덤이 메말라 쪼그라들고 사라져 좁쌀보다도 못한 한 까만 점만 보였다. 그토록 메말라있는 엄마젖에 나는 무한한 잘못을 빌고 만 가지 용서를 구했다.
그동안 엄마 가슴에 기쁨 준 것이 얼마나 되며, 그외 엄마 가슴에 실망감과 대못질한 것이 헤아릴 수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명절 때마다 아침 밥술 뜨고 야멸차게 뒷모습 보이며 서울갈 제 얼마나 서운해 여기셨을까? 비로소 나는 나의 삶에 못난 아들의 진정으로 ꡐ불효자였구나.ꡑ 뉘우치며 이제는 뵙지 못할 엄마에게 뒤늦은 애정과 처절한 잘못을 빌어야 했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也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야
往而不可得見者 親也
왕이불가득현자 친야
아무리 나무가 가만히 있으려 하나 몰아치는 바람에 멎지를 않습니다.
자식이 효도를 다하고자 하나 그때까지 부모는 기다려 주시지 않습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만나뵐 수 없는 것이 부모입니다.
우리 형제는 부르기 좋고 흔한 이름 다 놔두고, 아니 동네 아이들 이름은 다 잘 지어주면서 -대단한(?) 할아버지 밑에서 뼈대 있는 집안이라 큰소리치면서도 손자손녀들 이름들은 개판으로 만들어 놨다. 부고장을 만들어 놓고 보니 개훈, 개정, 개효…. 팔남매가 개판이었다. (塏: 높고 지강할 땅 개, 본래는 奎․基자가 돌림자임). 내 이름만 보더라도 ꡐ높고 강한 땅덩어리에 마음과 중심을 잡는 충성 충(忠)ꡑ을 써놨으며, 이름이 하도 무거워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 하여 이름자 앞에 禾谷이라는 호를 붙여 쓰기로 했다. 하긴 어릴 적부터 단종애사의 사육신 중 문관이자 무관이었던 李塏의 존명은 할아버지로부터 익히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아마 土붙은 개자를 발견하고는 썩 장하다고 여기셨나보다.
울엄마 얘기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울엄마가 글쎄 잘 걷지도 못하시는데 아버지랑 서울에서 항곡리로 줄행랑을 치신 후, 산자락을 네 발로 걸으며 농사 같지 않은 고추농사 지으며 사시다가 지난달에 가셨다. 그것도 곡기 끊은 지 삼일 되었다기에 주말에 내려가 미음 한술 떠 넣으며, ꡐ아이구 엄마! 이 세상 무엇이 아쉽다고 그토록 힘들어 하시나요?ꡑ 했더니 눈물을 주르르 흘리시며 미음 한술을 애써 받아넘기셨다. 그리고 우리는 뭐에그리 삶이 급하다고 허둥대며 서울에 왔고 다음날 저녁 엄마는 홀연히 가셨다.
우리 막내가 하는 말, ꡐ오빠가 엄마한테 빨리 돌아가시라고 했다면서…ꡑ (묵묵…) 어쨌든 우리는 무슨 정신으로 장례를 치렀는지 모른다. 결과, ꡐ울 엄마가 기적을 이뤘네!ꡑ였다. 돈 한 푼 없던 우리 집안에 아버지(94세) 편히 사시라고… 장례 치르고 남은 돈 천만 원을 놓고 가셨다. 어찌 이렇게 고마울 수가…… 모두가 ꡐ감사합니다ꡑ 였다.
울엄마는 그렇게 많은 돈을 셀 줄도 모르신다. 기껏해야 계란꾸러미와 고추포대 머리에 이고 읍내 장에 가서 고등어 몇 마리 사 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던 엄마가 보란 듯이 돌아가시면서 거금 일천만 원을 아버지와 식구들 앞에 떠억 내놓고, 당신이 자주 가시던 밭자락 위에 묻히시다니 참말로 무슨 말이 필요할까?
지금은 죽음을 새롭게 생각하고 희망을 기다리는 부활과 봄, 사순절(四旬節) 시기입니다.
사순절이 되면 신앙인들은 ꡐ당신 자신의 모두를 내어주신 십자가의 신비ꡑ를 묵상하고 지나온 삶을 속죄(贖罪)하는 가운데 희망찬 부활을 기립니다.
자연의 신비, 또한 온갖 산과 들녘에서는 새롭게 태어나는 새싹과 꽃망울이 트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 풍성한 추수철을 기약하며 논밭에 씨앗 가꾸기 위한 준비로 마음과 몸이 다 바쁜 시기이다. 모두에게 광영(光榮) 있기를.
삼월은 늦은 봄이라 청명곡우 절기로다.
봄날이 따뜻하여 만물이 화창하니,
온갖 꽃은 활짝 피고 새소리 갖가지라.
한식날 성묘하니 백양나무 새 잎 난다.
조상님께 감사함을 술 과일로나 펴오리라.
농부의 힘드는 일 가래질이 첫째로다.
-농가3월령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