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평균수명(우리나라 남 76, 여 81)을 넘어서면 솔질하게 말하자면 언제 죽을는지 알 수 없으며 혹은 죽지 않더라도 체력이 쇠약해진다든지, 치매에 걸린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노인들이 제일 먼저 잃는 것은 ‘어른’인 것이다. 노인들은 언뜻 보기에 누구나 쉽게 단념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어른’이란 큰 감투나 벼슬을 하고 있는 착각에서 행사장에서는 상석 차지, 그리고 말많은 것과 큰 소리로 옆 사람과 대화하는 등 타인에게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동인데 이런 경우 선배적 입장에서 스스로 뒷좌석으로 물러앉아 있는 것도 모양새가 좋은 행동이며, 그 행사에 원만한 진행을 위해 노인 스스로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면서 어른의 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오늘의 우리의 노인들은 그동안의 시간 흐름 안에서 부단히 쌓아올린 경험에 뿌리를 내린 노인들이며, 시간의 지속성과 연관성을 갖고 명쾌하게 구현하는 노인들이지만 이런 것들은 오늘 날에는 그리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는 것이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게 변하는 것이 오늘의 세상사이기 때문이다.
봄의 늦자락에서 신록을 환영하듯 노란 복수초, 동의 나물, 애기똥풀 나도벙이, 괭밥, 민들레 등 노랑색의 야생화들이 길가에서 빈터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곱게 피고지고 하는 꽃의 계절, 화창한 계절이다. 그러나 노인들에게는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별안간 세상이 암담하게 느껴지면서 우울 증세가 일어나고, 별것 아닌 것에도 화를 잘 내게 되었다. 이런 현상들은 혈압에 이상이 있든지, 동맥경화가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지만, 결코 노인들은 그렇다고 시인하지 않으면서, 자식들이 병원에 가보자고 권유하면 점점 더 화를 내며, 나는 내 몸을 잘 아는데 라며 건강에 장담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내다가 큰 화를 당해 병원에 누어 있거나 해서 가끔 문병을 가는 경우가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좋은 것이다”라고 중세기의 대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아름다움이란 타인에게 양보할 수 있는 너그러움일 것이다. 기를 쓰고 넉살 좋게 나서는 나이는 벌써 지난 세월이다. 설령 연장자라며 추켜세우더라도 결정권은 장년기의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노년은 앞으로 대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정권은 젊은 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공자께서는 나이에 따라 시기를 구별해 성취해야 할 과제들을 제시하였다. 거기에는 일흔 살에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쫓아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게 된다고 말하였다. 나이 먹은 노인들은 가능하면 존경을 받고 사는 것이 좋다. 그러나 존경은 헛되이 나이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존경 받을 만해야 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무엇이나 억지를 써서라도 상대방이 참고 따라주거나 또는 간드러진 목소리도 지당하다느니 어쩌니하고 비위만 맞추면 그것은 노인의 권위에 존경을 허무는 행동이므로 끝장난 인생인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노년에 있어서 청춘의 활동성과 활력을 회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신’이다. 청춘에 있어 심리적인 면이 그러했듯이, 노년 바로 지금이야 말로 정신에 의해 청춘을 다시금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년은 청춘의 심리적, 육체적인 것을 극복하고 그것을 정신력에 의해 청춘을 다시금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노년이란 언젠가는 몸이 말을 안 듣게 된다. 눈이 안보이게 되고, 귀가 안들리게 되며, 몸의 한 부분을 쓸 수 없게도 된다. 머리의 회전도 나빠지게 된다. 이런 것들이 하늘의 섭리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할 때 덕(德)을 쌓아가면서 살아야 한다. 덕이란 타인의 평가를 목표하지 않는다. 덕은 결과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덕이란 이런 목표에 초점을 두며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노인들은 자서전을 써서 남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녀들에게 가문의 역사를 전하는 일이므로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돈과 시간 등 여러 여건이 어려운 사람은 그날 그날 간단한 일기를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유언적인 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언장은 사후에 자녀들이 분규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되겠지만, 유언장은 정확한 법적 조건을 갖추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고 하니, 전문가와 상의해서 작성해 놓아야 한다. 유언장을 쓴다고 해서 금방 죽는 것도 아니다. 오래 살면 몇통씩 다시 고쳐 써도 되는 것이고 쓰다보면 편안하게 논리적으로 언제든 쓸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될 것이다.
새가 죽을 때에는 그 우는 소리가 애처롭지만 사람이 죽을 때에는 그 하는 말이 선(善)하면서 진실(眞實)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