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 출생 정치인을 흔히 ‘교도소 담장을 걷는 사람’이라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소신과 희망, 꿈을 가지고 정치를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만의 원칙과 정도를 가더라도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열렬히 지지하고 열광하는 지지자들도 언론과 검찰, 경찰의 사냥감이 되어 상처를 받으면 곧바로 돌아선다. 얇은 양은냄비에서 끓는 내용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생각하는 인간이기에 선순환(善循環)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
500만명 추모의 의미
지난 5월은 제16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소식에 많은 국민들이 슬퍼하였고, 일부의 경우는 할 말은 있으나 말을 아껴야만 했다. 그리고 500만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조문을 하였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를 지지했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사람들은 마음속에 검은 리본을 달았을 것이다. 이들 조문객들은 무슨 마음으로 조문을 하였을까?
첫째로 원칙의 패배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자기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능력과 무관하게 앞서가는 사람이 있고, 불의가 정의를 이기고 성공하는 세상을 살아왔다. 결국 원칙과 소신이 좌절된 모양이 자신처지와 동일시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안타까움의 일차적 감정표현이었을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모든 것은 내던져 약자 편에 서주었던 노 전(前)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와 미안함일 것이다. 그는 다수 국민들의 지지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이지만 언제나 약자의 편에서 생각하고 권력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는 소수(마이너리티) 대통령이었다. 자신들을 지켜주었던 대통령을 자신들이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일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권위와 명예, 인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 대부분도 등을 돌렸다.
셋째로 안타깝고 아쉬움에 더하여 또 다른 희망을 이야기 하자는 것이다. 고인과 똑 같은 지도자가 나오지는 않더라도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희망을 줄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강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권력과 기득권이 일반서민과 소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는지도 모른다.
부활하지 못하는 작은 예수
어떤 이는 고 노 전태통령의 삶을 예수그리스도의 삶에 비유하기도 한다.
예수가 마구간의 말구유(여물통)에서 태어났듯이 노무현도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예수님은 30세부터 3년 반의 공생애를 통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가장 약한 자들과 함께 했다. 문둥병자, 소경, 절름발이, 창녀, 가난한자 등 힘없고 약하고 버림받은 자들을 찾아가 희망을 주었다. 노무현은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들을 찾아가서 이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였고 2002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성전을 성전답게 하고 깨끗이 청소 하였다. 기존의 기득권 보수세력인 제사장과 장로, 세리, 바리새인들에게 사회정의를 위해 도전장을 낸 것이다. 결국 이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만다. 당시 재판관인 빌라도는 예수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에게 죄를 묻지도 않았다. 그리고 강도 살인죄로 십자가형을 받은 바라바와 예수 그리스도 중 한명을 용서할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선택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장로, 군중들은 바라바를 용서하고 예수를 죽이라고 외치며 건의한다. 당대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력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조차 불가능하였다.
예수는 군중들의 조롱과 돌팔매을 맞으며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죽음을 향해 올라간다. 예수는 마침내 잔혹한 죽음을 선택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찾아가 기적을 행하고 성전을 청소하고 기존세력 앞에 맞서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3일만에 부활한다. 예수와 노무현은 분명히 다르다. 노무현은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한줌의 재가 되었다.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예수의 복음을 전파할 12제자도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사도바울도 만들지 못한다. 노무현의 주변에는 스스로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는 노무현이 거두어야 할 노(怒)한 제자들만 남아있다. 바보라서 감동을 주었고, 실패해서 신화가 만들어졌다.
성인은 죽음으로서 지배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생전의 노 전대통령을 가볍다고 평가 하였다. 그러나 가볍다는 것은 소탈함을 의미한다. 소탈함은 인간미가 있다는 뜻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소탈하면서도 가볍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균형점은 신(神)만이 알수 있다. 아예 없을 수도 있다. 또한 분열과 독선의 지도자라고 회자(膾炙)된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離合集散)할 때 홀로 끝까지 버티는 모습도 보였다. 모두들 자신의 이익과 정치적 계산속에서 움직일 때 항상 소수편에 섰다. 이것을 선긋기, 편가르기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선긋기와 분열의 리더십은 역설적으로 변칙에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의 리더십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무모함은 이상(理想)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反證)하는 것이다.
폭군은 그가 없어짐으로 그의 지배가 끝나지만 성인은 그가 죽음으로서 지배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시대에도 고 노무현 전(前)대통령의 뒤를 이을만한 정의로운 인재들이 여기저기에서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특히 우리당진에도 나타나 새로운 당진시대가 열리기를 희망한다. 이제 지자체 선거가 1년 남짓 남아있다. 출마를 준비하는 인재들이 가슴에 새겼으면 하는 대목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