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그랜트가 주연한 1995년 개봉작 영화 ‘잉글리쉬 맨(Englishman)’은 높이 6m가 부족해 ‘산(mountain)’의 지위에서 ‘언덕(hill)’으로 전락할 위기에 빠진 마을의 최고봉 ‘피농가루’산을 지켜내기 위한 영국 웨일즈 지방 마을주민들의 분투를 그리고 있다. 측량결과 피농가루가 지도에 등장하지 못하게 되자 상심한 마을 주민들은 고육지책으로 피농가루의 높이를 높이기로 한다. 마을 사람들은 측량을 끝내고 떠나려는 지도측량사의 발을 온갖 수단을 써서 막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총동원되어 피농가루 언덕으로 흙을 실어 나른다. 심지어는 작업을 지휘하던 마을의 목사가 과로로 숨지자 그의 관을 정상에 쌓고 흙을 덮는다.
죽음까지도 불사하게 만들었던 ‘피농가루’는 그 마을 주민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지역의 최고봉은 단지 여러 산 중의 하나만은 아니다. 그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이요, 상징이다. 마치 한국인들에게 백두산이 여러 산의 하나가 아니라 민족의 정기이자, 상징이고 자긍심이듯 말이다. 마찬가지로 당진의 아미산은 이 지역 학교 교가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역주민들의 자긍심이요, 상징이다.
그런데 이 자긍심이자 상징이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농어촌공사가 이 아미산의 한 자락에 66세대, 2만3천여평 규모의 전원마을을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이 전원마을이 농민이나 서민을 위한 주택단지도 아니다. 세대당 100~200평 규모로 분양원가만 3억원에 이른다.
결국 몇몇 부유층을 위한 고급 주택단지를 위해 당진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이자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인 아미산의 한 자락이 잘려나가게 된 셈이다.
혹자는 아미산 정상도 아닌 한 자락인데 뭐 큰 문제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진읍민들의 휴식처였던 남산이 훼손되고 파괴되는 과정을 조금만 떠올려 보면 문제점을 느낄 수 있다. 당진읍의 허파요, 녹색벨트였던 남산에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야금야금 잠식한 결과 ‘야호대’에 이르던 산책로가 사라져 버렸다. 급기야는 남산의 한 자락에 고층아파트가 새로 건설되면서 산 정상보다 더 높게 치솟아 주민들의 시야에서 산의 풍광을 앗아가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미산의 한 자락에 건설되는 전원마을을 소홀히 볼 수 없는 이유다.
더욱이 성북리 전원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가 당진군의 사업 중단 및 사업대상지 변경 검토 요청에도 불구하고 강행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농어촌공사의 강행의지를 재확인한 당진군은 “주민설득과 친환경적 단지 조성을 촉구하겠다”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지역주민이나 환경단체, 당진군의 의견을 단칼에 묵살한 농어촌공사는 공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내던지고 사익추구에 혈안이 되었다고 하지만 ‘불가하다’는 회신 한 장에 뒤로 물러서는 당진군도 자치단체로서의 자기역할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때문인지 당진군 건설과장은 성북리 보전대책위원회와 환경단체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농어촌공사가 법적 절차를 밟아 신청하면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적 절차에 따른 신청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한다는 당진군의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당진군은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한전의 신당진-신온양 송전선로 건설계획에 대해 거듭 ‘불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한전이 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자치단체의 행정 처리는 논리적인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니 당진군이 지역주민의 의견보다는 농어촌공사의 눈치를 더 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업 중단 및 사업대상지 변경 등을 요청했다는 당진군이 농어촌공사의 회신 하나에 이른바 '자연친화적 단지 조성' 등으로 입장을 바꾼 사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것이 아니라면 당진군이 민종기 군수의 공식 발언과 달리 애당초 사업을 중단시키거나 대상지를 바꿀 마음이 없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농어촌공사가 공문 하나에 마음을 바꿀 것이라고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진군은 사업 중단이나 대상지 변경을 요구했다면 거듭 사업불가 의지를 보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