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여인도 아름답게 보인다는 가을이 성큼 우리 앞에 와있다. 머지않아 8월 명절 한가위(10. 3)에는 고향의 형제들과 출향했던 친지들이 함께 차례를 맞게 된다. 지구촌의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고향은 있을 것이니, 고향의 모습과 숨은 이야기들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고향 ‘당진’이라는 이름은 언제쯤 무슨 의미를 갖고 태어났을까?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중국 당나라시대, 우방국의 형(兄)으로 여기고 문물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나루터가 있었으니 당나라 唐, 나루 津을 붙여 ‘당진’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때가 서기 797년 삼한·백제시대의 ‘혜군’을 ‘당진현’으로 개편되면서 부터이니 무려 1200여년의 나이를 먹은 셈이다.

이후 조선말 고종 32년(1895) ‘당진현’에서 ‘당진군’으로 지금의 행정구역 명칭의 변경도 100년이 훨씬 넘은 것이다. 어찌되었던 이렇게 탄생한 당진은 천년의 역사적 거목이 되었고 이 큰 나무를 대대손손 거름주며 건강하게 키워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당진은 지정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위치에 터를 잡고 있으며 다른 도시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무계획적인 난개발과 환경의 무법자들에게 유린당하다보니 당진 거목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군민들은 걱정이 크다. 생명체를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위에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예쁘게 가지치며, 알맞은 햇빛을 받아야 되는 것이거늘, 이 천년의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

이제 당진은 복된 터전위에 전기철탑으로 하늘을 가리고, 원룸 단지가 흉물이 되어가고, 서민들을 외면한 턱없는 분양가의 고층아파트 숲은 이미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나타내고 있고, 아름다운 서해 바다의 갯마을들은, 석탄이나 고철로 뒤덮이고 있으니, 생태계 파괴와 어민들의 생계터전은 잃고 만 것이다. 인간들의 파괴 행위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들판이고 산이고 불법 훼손으로 잘라져나가고 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와서 ‘그린’이니 녹색환경을 외쳐보아도 때는 이미 늦었다. 군내 전역의 환경문제는 천년의 큰나무나 인간 생존에 심각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군민들은 이제 환경의 문제를 깊이 염려하고 있다. 왜 계획적·균형적 개발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산이나 들이나 지역발전과 지역경제를 위해서라면 공장도 짓고 집도 지어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나가야 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다만 무모한 도발적 개발 행위로 기름진 옥토가 병들어 가고 있음을 탓하는 것이다.

환경에 비상이 걸렸다. 우직하고, 욕심 없이 터전을 일구고 지켜왔던 주인들은 값싼 회생(보상)을 당해야 하고 어느 날 뛰어든 객(客)들은 특혜 받아 활개치며 부를 축적하는 당진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부족해 아직도 남은 계획관리지역 토지도 상당 면적이 외지 투기꾼들 손에 넘어가 있다니, 완전히 주객이 뒤바뀐 서해안 중심의 당진 땅은 퇴락 터전이 되고만 것인가? 하필이면 전국의 환경오염 퇴출 기업들이 왜 당진으로만 몰려들고 있으며, 산업단지 또는 규제지역이라고 해서 내몰리는 토지주들은 어디에 가서 살아야하는가? 법이나 규정을 만들어 우선 삶의 보금자리 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당진이라는 큰 나무 하나를 지붕으로 삼고 살아온 우리 당진인들은 농업이나 영세 자영업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었다. 투기꾼들이나 대기업체들에게 물려주려고 누천년 이 땅을 지켜온 것이 아니다.

이제 천년 고목(古木)을 빨리 되살리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