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또 한번의 죽음

가슴이 툭 떨어진다

가을, 존재가 빠져나간 다음의,

아주 희미한, 물그림자같은,

흔적… 내가 가만히 그 곁에

다가간다, 비수처럼 내 가슴에

외닿는, 부재의 결… 차디찬…

삶이, 나날의 줄거리의 그물이

펄럭인다, 잊지 마, 넌 노예야

내가 비껴선다 또는 돌아선다

가을의 경사… 윙윙 내 영혼의

벽을 따라 오르페의 울음소리

피처럼 뚝뚝 떨어진다, 안녕,

살아서 유령처럼 내가 존재의

변경에 이른다… 그곳에서

이슬젖은 금가루처럼 후두둑

내가 흩어진다 흩어진다

김정란 시집 '매혹, 혹은 겹침' -세계사-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