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사진은 1977년 11월에 남편을 만나 일주일만에 약혼식을 올렸을 때 사진이다. 어른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법이라는 말에 두 번 만나서 약혼하고 두 달이 지나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 당시에는 모두 그랬지만 나 역시도 그리 넉넉하지 못한 집에 시집온데다 둘째임에도 불구하고 장남 역할을 자처하는 남편을 만나 다섯이나 되는 시동생들 뒷바라지에 늘 바쁘고 힘든 나날이었다.

빨리한 결혼이어서 그런지 애들도 바로바로 삼남매를 연년생으로 낳았다. 시집와서 3년 동안을 내리 배가 불러 있었으니 사진관 운영하면서 살림하고 애 셋 키우는 게 만만치 않았었다.

두번째 사진은 가족계획이 끝난 마지막 아들의 돌사진이다.

세번째 사진은 결혼한 후 처음으로 첫째 아들이 군대가기 바로 전주에 가족여행을 간 사진이다. 여행이라고 해도 1박2일도 아니고 새벽 4시에 출발해서 동강에 가서 래프팅을 하고 밤 12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지금은 아들과 딸이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하루만 사진관 문을 잠가도 큰일나는 줄 알고 있을 때여서 처음인 가족여행임에도 불구하고 하루만에 다녀왔다.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이 없어 갈 곳이 없는 것을 보고 마을회관을 지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2003년에 5월에 서문리 부녀회를 창립해서 서문리 부녀회장을 시작으로 ‘새마을’에 뛰어들었다. 마을기금이 없어 100만원을 빌려 새마을사업을 시작해서 첫해에는 입상을 하고 그 후 2년 내리 새마을운동 소도시부분 최우수상을 받아 3년만에 마을회관을 장만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사진이 2004년 새마을사업 2년만에 최우수상을 탄 기념사진이다. 3년 동안 부녀회원들의 노력과 희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고 고마운 생각만 든다.

지금은 3대째 70년이 넘게해 온 가업을 딸(조일사진실 운영)과 아들(아사달스튜디오 운영)에게 뿌듯한 마음으로 대물림해주었다. 지금은 막내아들도 경찰이 되어 있어 내가 여유있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더 많은 봉사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