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농어촌공사 당진지사 지사장으로 근무했던 김후각 군수 예비후보(자유선진당)는 이번 6.2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며 정치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군민 모두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당진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리더로서의 행정적 능력과 다방면의 뛰어난 지식을 토대로 지역의 발전에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직’과 ‘신뢰’ 갖춰
김 예비후보는 여름에는 아침이슬을 맞으며 학교를 다니고 겨울에는 아침밥을 준비하는 어머니를 도와 물을 길어다 드렸단다. 아침잠도 없이 바지런히 일하고 학교에 다니던 모습에 주변의 마을 어르신들로 부터 근면하기로 소문이 났었다고 한다.
“주변 마을 어르신들이 친손자, 손녀에게도 쉽게 주지 않던 달걀을 선뜻 내줄 정도였죠. 당시 달걀은 가정의 큰 수입원이었거든요. 귀한 달걀을 선뜻 내주실 정도로 어르신들이 이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그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큰 인물이 되자’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어린나이에 가족들과 떨어진다는 것에 대해 고민도 많았지만 결국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인천으로 중학교 진학을 결정했다.
“어린나이였지만 혼자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매사에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했어요. 하숙생활을 하며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했기 때문에 내가 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했죠. 힘들고 어려웠지만 책임감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정공법은 나의 신념
타지 생활이 처음부터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충청남도에서 진학한 학생을 당시 학교 동창들은 외지인으로 치부했고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며 괴롭힘을 당하거나 놀림을 받았다.
“어느 곳에 기댈 곳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어요. 고향의 가족들에게는 더욱 말할 수 없었죠. 한 달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지는 고통에 학교가기가 죽기보다 싫었어요. 결국 이렇게 학교를 다녀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큰마음을 먹고 등교를 했죠.”
‘죽으면 죽겠지’라는 생각으로 싸움을 가장 잘한다는 친구에게 일부러 싸움을 걸었고 결국 싸움에서 이겼다. 그때부터 더이상 괴롭힙당하지 않았다고.
그는 “이때부터 정공법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며 “지금까지 나의 신념으로 이어지고 있는 부분이며 첫발을 들인 정치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뿌듯했던 교직생활
대학 진학을 눈앞에 둔 시기가 됐을 때 그의 부친이 세상을 떠나 가계가 기울기 시작했다. 사법고시에 뜻을 두고 있던 김 예비후보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고려해 인천교육대학에 입학했고 ROTC에 지원해 군복무를 마쳤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경기도 여주 능북초등학교로 교사로 발령받아 교편을 잡게 됐다. 교사로 근무할 당시 학생들에게 태권도 및 서예를 가르쳤으며 초등학교 때 기계체조 충청남도 대표선수로 활동한 경력을 살려 다방면에 뛰어난 교사로 인정받았다고.
“본래 생각하고 있던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교편을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2년 동안의 짧은 교직생활이었지만 학생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뿌듯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더욱 어려워지는 가정형편에 현재 농어촌공사와 통폐합 되기 전의 농지개량조합에 사무직으로 입사하게 됐다.
‘우여곡절’ 파직과 복직
5급 공채로 입사한 그는 11년 만에 3급 진급이라는 빠른 성장을 보였다. 그는 근무도중 감사 업무 수행 과정에서 알게 된 공사 비리 및 여러 가지의 위법 부당한 사항을 행정 내부 통제의 방법으로 개선하려 했다고 말했다. 소속장에게 9회, 1차 감독청인 충남도지사에 20회, 2차 감독청인 농림수산부 장관(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 2회 등 총 31회 걸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감사 결과 동료 직원을 음해하기 위하여 허위 진정 등을 했다는 오명을 쓰고 파직을 당했다고.
“파직 직전 징계 위원회에서 이 같은 문제를 더 이상 제기하지 않으면 징계 파면도 없고 승진을 보장 시켜준다는 회유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징계위원회실을 임의 퇴장함으로써 결국 파면된 우여곡절이 있죠.”
바른 소리와 주장을 펼쳤던 그는 오명을 씻기 위해 긴 법정 싸움에 들어갔다. 진실 여부에 대한 서증 등 증거들은 모두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상대가 소장하고 있고 사실대로 말해 줄 직장 내 증인이 일절 없었다고.
변호사도 없이 8년이라는 기간 동안 정식 소송 절차를 걸쳐 투쟁한 결과 각 사건 법원의 승소 판결을 토대로 2급으로 복직하게 됐다.
“정확한 가치판단과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추진해온 결과죠. 힘들고 지친 생활이었지만 끈기 있는 도전정신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약력
- 삼봉초등학교~인천 송도중고등학교
~인천교육대학 및 한국 방송통신대학교
-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총동문회 부회장
- 당진·아산·예산 3개 시군
장로회 연합회장
- 경기도 여주 능북초등학교 교사 재직
- 전 농어촌공사 당진·아산지사 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