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운수업에 종사하고 있는 박용빈씨의 바람은 아들 영롱군이 하루빨리 입단해 더 큰 무대에 서는 것이다.

“항상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로 인해 바둑을 시작하게 됐죠. 입단이 늦어지면서 아들이 힘들어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부천에서 살다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박용빈씨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지만 10년이 넘도록 묵묵히 아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영롱군의 동생 이자 올해 수능시험을 치른 고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에게도 항상 미안하다.

“오빠 뒷바라지에 학원도 제대로 보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항상 밝은 표정에 열심히 하는 모습이 더 없이 고마울 뿐입니다.”

박영롱군의 어린 시절을 또래보다는 형들과 자주 어울렸고 경쟁심이 강해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세 살때 구구단을 외울 정도로 영특했던 영롱이에게 바둑을 가르쳤던 박씨는 “영롱이가 학교에서 특별활동시간에 바둑을 배우게 된 뒤 바둑학원을 보내달라고해 당진에 있는 기원에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 끝나면 기원으로 달려가 밤 12시가 다되도록 오지 않아 몇 번이고 찾아 갔었죠. 기원에 가보면 어른들과 바둑을 두고 밥도 같이 먹고 있더라고요. 바둑 실력도 눈에 띄게 늘었죠. 그러더니 프로바둑기사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이런 영롱군의 뜻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프로바둑기사가 되길 원했고 그런 아들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한다.

“저도 바둑을 두고 있기에 처음부터 프로바둑기사의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죠. 하지만 아들의 뜻이 워낙 완고했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대견할 뿐입니다. 항상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주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