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겸손이란 말을 자주 언급한다. 제대로 실천할 용기나 의지도 없으면서 겸손한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때로는 겸손을 주제로 글을 쓰기도 한다.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를 말한다. 서양에서 유래하는 겸손의 어원은 라틴어‘humus’이다. ‘humus’라는 단어는 ‘흙 또는 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 겸손(humility)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흙 또는 땅’이라는 의미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흙은 언제나 사람들 혹은 동물들의  발밑에 있다. 사람이나 동물들 위에 흙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의 발밑에서 흙은 삶의 바탕이 되어주기도 하며 자신보다 이들을 인정하고 세워주며 높여준다. 또한 흙은 나무의 뿌리를 보듬어 안고 있으며 열매를 맺도록 양분과 수분을 제공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보다 다른 생명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흙이라는 의미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겸손의 어원적 의미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고자 한다.

“여러분을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교장이 되겠습니다.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군림하는 교장이 되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여러분을 섬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3월 1일자 본교에 부임해서 80여명의 교직원 앞에서 인사말 중에 언급한 말이다. 엊그제 같은데 3개월이 지나고 있다. 별 대책 없이 앞서는 마음으로 했던 말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직원들과 첫 만남에서 언약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낮은 자세로 섬기는 모습을 실천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겸손을 실천하기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어떤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인내심도 있어야 한다. 바보 같은 모습, 형편없는 모습으로 전락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교장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단위학교 교육이 표류하는 모습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주변 상황이 어려운 지경에 빠져들고 있음을 예상하고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첫 만남에서 선언했던 겸손과 낮은 자세를 과감하고 용기 있게 실천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업무추진 과정에서는 최대한 선생님들의 전문가적 소양을 존중해 주었다. 한편 간부회의, 부장회의 등에서는 CEO의 역할을 과감히 드러내면서 의사결정을 주도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교장의 의도를 이끌고 점검했던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배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뻔뻔한 모습으로 학교교육을 이끌어왔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다. 겸손과 섬김의 자세는 현실적으로 허용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낮은 자세, 섬기는 모습의 바탕에는 원칙을 성실히 지키면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인성이 깔려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집안 누구 때문에 출세가도를 달린다고 한다. 아니면 지연, 학연으로 불의한 월권을 행사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이런 사람의  삶의 방식은 교만스럽게 약자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속내를 의식하지 못하고 독불장군으로 좌지우지한다. 어리석고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타인보다 자신만을 위하는 삶의 행태가 팽배해지고 있는 요즘 겸손(humility)의 어원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자신을 낮추어 다른 생물체를 세워주는 ‘흙’처럼 남을 인정하는 태도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로 인해 더 단단하고 튼튼해지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인생에 귀한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태초에 사람을 흙으로 빚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흙으로 창조된 인간이기에 어쩌면 겸손은 이미 우리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그 본성이 드러나면서 겸손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삶이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