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학기에 방송통신대학교 출석 수업을 대전 유성에 소재한 충남·대전 지역대학에서 받았다. 필자는 현재 청소년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주로 방송강의를 시청하면서 공부하지만 학기마다 3일간 출석 수업을 받는다. 이 같은 교육과정 운영이 방송통신대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고 전공학과 학생들끼리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계기가 된다.
강의실에 40여 명의 만학도들이 모여 강의를 받는데 그 중에 남자는 7,8명이고 60대 정도의 고령은 필자와 또 한 분이 있어 2명 뿐이다. 연령대가 비슷해서 반가움에 통성명을 했더니 대전에 모 지역교육청 교육장이라고 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할까 그 이후 학기마다 출석 수업을 받을 때면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 격려하는 등 많은 얘기를 나누곤 한다. 그 외 학생들은 대부분 30,40대 아줌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필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위의 내용을 쓴 것은 절대 아니다. 독자들의 오해가 없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통신대학에 적을 두고 학습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방송 시청, 과제물 제출, 출석수업, 중간고사, 기말고사 대비 등으로 집안 행사는 물론이고 각종 모임과 상치되는 경우가 많아 난처할 때가 자주 있다.
난처한 사정을 얘기할 수밖에 없을 때 그 얘기를 듣고 혹자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전형적인 모습이고 모범적인 사례라고 필자 앞에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그 사람의 속내를 모르는 것 아니기에 액면 그대로 마음속에 새기지는 않는다.
필자가 대기만성의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말에 공감해서가 아니다. 대기만성이 필자의 마음에 와 닿는다는 느낌이고 필자와 어떤 인연이 있는 고사성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느낌에 특별한 의미는 없고 단지 다른 사람보다 모든 것이 늦다는 생각에서 감히 대기만성을 필자와 연유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은 글자 그대로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인물은 오랜 공적을 쌓아 만년(晩年)이 되어 성공한다는 뜻으로도 말할 수 있다.
교육계에서 큰 소리 치며 내로라하던 분들이 정년으로 교육현장을 떠나면 모든 자취와 모습이 사라지는 것 같다. 40여 년의 교육 경륜이 사회에서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로 생각된다. 필자도 얼마 남지 않은 정년을 앞두고 있다. 물론 특별한 인생 설계를 구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기력한 삶이 인생 여정에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역사적인 인물들 중에 대기만성의 모범 사례가 우리의 삶을 반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명장 명림답부는 94세에 차대왕의 전횡을 보다못해 구데타를 일으켜 왕을 바꾸고 국상이 되었으며 고려의 정중부는 무신으로 70세에 문신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었다. 조선시대 얼굴이 못생겨 놀림을 받던 7삭동이 한명희는 60세가 되어서야 세조에게 발탁되어 그를 도와 정권을 잡았었다.
서양의 예로 영국의 총리를 역임하였으며 세계적인 지도자, 영웅으로 일컫는 윈스턴 처칠은 70세의 고령에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같이 역사적으로 대기만성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준 인물들이 물리적인 연륜을 초월하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던 것이다.
인생의 여정을 운명적인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염세주의 사고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비참한 모습인가 대기만성의 신념으로 황혼의 연륜이 더해간다 할지라도 젊음의 꿈과 접목된 황혼의 꿈을 펼쳐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노년을 장식한다면 더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인생의 여정이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