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요일과 목요일이 손꼽아 기다려지는데 그 이유는 이날 방영되는 ‘뿌리 깊은 나무’라는 드라마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에서 사대부의 나라를 꿈꾸는 비밀조직 ‘밀본’은 왜 그토록 한글창제를 반대하고 반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쓸까? 그 이유에 대해 ‘밀본’의 수장인 정기준은 아주 쉽고 명료하게 설명한다. “글자는 무기다. 칼보다 더 무서운 무기다. 사대부가 왜 사대부인 줄 아는가. 글자를 알기 때문이다. 그게 사대부의 권력이고 힘의 근거다. 백성 모두가 글자를 읽고 쓰게 되면 조선의 모든 질서가 무너진다. 문자 반포를 막아야 한다.” 만약 한글이 반포돼 백성들이 쉽게 글자를 익힐 수 있게 된다면 사대부들이 갖고 있는 권력의 근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기득권 세력을 공포에 떨게 한다.
현재 지방의회는 새해예산안 처리와 행정사무감사로 분주하다. 지난 10월 필자는 충청남도에 전화를 해 실과별 예산편성요구서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주민참여예산조례를 도의회에 상정하기도 했다는 충청남도의 담당자는 자치단체에서 십 몇 년째 들을 수 있었던 내용과 똑같은 답변을 되풀이 했다. “아직 예산이 확정되지 않아 공개할 수 없습니다.” 이미 확정돼서 홈페이지에도 게재돼 있는 예산서를 굳이 전화해서 달라고 할 이유는 없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에, 앞으로 삭감하거나 증액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굳이 전화해서 때로 얼굴까지 붉혀가며 달라고 하는 것이다.
지난 11월 말, 이번에는 당진군에 전화를 걸어 새해예산안을 요구했다. 이미 지난해 당진군의 예산안 비공개 결정에 대해 행정소송까지 제기해서 난생 처음으로 법정다툼까지 벌인 끝에 승소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판명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진군의 예산담당자는 공식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쉽게 말해 법적인 강제사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개하더라도 민원인의 요구를 쉽게 들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11월24일 공개를 청구한 새해예산안은 12월2일에서야 공개하겠다고 답변이 왔다. 행정소송 결과로 인해 공개할 수밖에 없는 정보를, 군의회에 상정했기 때문에 이미 다 나와 있는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통지하는데 8일이 걸린 것이다. 물론 법정 기일인 10일 이내에 처리했기 때문에 “법대로 했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추구하고 있는 ‘서비스 행정’의 모습은 절대 아니다.
정부는 올해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해 주민참여예산제를 임의규정에서 강제규정으로 바꿨고 이에 따라 자치단체들도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충청남도와 당진군도 예외가 아니어서 주민참여예산 조례를 제정했다. 문제는 무늬만 주민참여예산제도라는데 있다. 충남도의회는 도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 수를 당초 도가 제시한 100명에서 40명으로 줄이고 희망 주민 공개모집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도의회 의장과, 도지사, 시장·군수 추천으로만 예산위원을 뽑도록 했다. 당진군과 군의회도 도의회에 못지 않다. 주민참여예산위원 전원을 군수가 위촉하도록 했으며 연구회 운영에 대한 규정을 통째로 삭제했다.
주민참여예산제도가 강제규정으로 바뀐 이유는 예산 편성과정에 주민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지방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방만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따라서 주민참여예산제의 취지를 감안하면 관련 조례가 시행되기 전이라고 해도 주민들이 예산안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 등에 공개해야 한다. 홈페이지 공개도 당진군 예산편성요구서를 찾을 때처럼 마치 미로 찾듯이 헤매지 않도록 메인페이지에서 바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치단체나 지방의회가 예산편성요구서나 예산안의 공개를 꺼리는 이유는 정보를 기득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마 앞서 ‘뿌리 깊은 나무’ 정기준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관료가 왜 관료인 줄 아는가. 정보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게 관료의 권력이고 힘의 근거다. 국민 모두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질서가 무너진다. 정보 공개를 막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