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폭풍주의보」(10)

글 김하린

그림 최평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갇혀 있었다. 갇혀 있다 보니 답답하고 진력이 났다. 그리고, 보다도 갇혀 있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를 못견디게 만들었다. 답답하고 견디기 힘들어 자주 밖으로 나가 보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똑같은 길만 오가야 하고, 똑같은 바다를 보아야 하고, 똑같은 얼굴과 마주쳐야 된다는 사실이 징그럽고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도대체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 싶고 문득문득 사람 같지도 않아 보이기도 했다. 우리들 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 중에는 우리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서도 답답해 못견뎌 하고, 설혹 이렇다 하게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답답하고 못견뎌 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역시 적응력이 뛰어나고 빨랐다. 아니, 적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 나름대로 탈출구를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빠삐용이 독방에 갇혀서도 창살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즐기고, 벌레와 놀고, 그 벌레를 잡아먹었듯이 말이다. 처음 발이 묶이게 되었을 때 어찌할 줄 몰라하던 사람들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 역시 배가 뜨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슬슬 포기하는 눈치들이었다. 티브이와 라디오의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여 보지만 당분간은 배가 뜰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관리공단사무소에 갔던 길에 알아본 결과 배가 뜨지 못했던 최장기록은 29일 동안이었노라 한다고 처남이 말했다. 그러니 29일 동안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 절반 정도는 각오하고 있는 게 좋을 거였다. 차라리 이곳 주민이 되었다는 심정으로 배가 뜨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안 가면 그만이라고 느긋하게 마음먹고 있는 게 나았다. 보다는 뭔가를 찾아나서고, 빠비용의 벌레잡기 놀이라도 해야 될 거였다.

빠삐용의 바퀴벌레는 어디 있는가? 찾으려고만 든다면 그것은 곳곳에 산재해있었다. 사람들은 같은 길을 몇번씩 오가면서 낄낄거렸다. 어떤 포기상태에서 차라리 쾌감으로 지어져 나오는 그런 웃음이었다. 썰물이 되면 해수욕장의 둥근 돌들에 달라붙어 자라는 파래가 파랗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거기 들어가 파래를 뜯고 쭐근쭐근 넘어지면서도 미끈거리기가 꼭 여자의 사타구니 속 같다며 깔깔댔다.

“그런데 왜 여기는 파래만 있고 조갑지는 없냐.”

“조갑지가 왜 없냐, 저기 파래 뜯는 것들이 거의 다 조갑지들이지.”

“집 떠나니까 별로 맛없어 하던 조갑지도 그리워 못살겠네. 자꾸 근질거리기만 하고 말야. 이런 줄 알았으면 그 조갑지라도 데려오는 건데.”

“어때. 오늘 한번 슬슬 수작을 좀 붙여볼까? 저기 저 아줌씨들도 은근히 그래 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 눈치던데 말야. 좀 늙었긴 하지만 지금 우리가 영계 폐계 가리게 생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