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말입니다. 하는 수 없지요 뭐. 오늘 나가지 못한다면 포기할 수 밖에.”

“모레 저녁 김포공항에서 여덟시 비행기라고 했나요.”

“여덟시 반요.”

“여섯시나 일곱시까지만 김포공항에 도착할 수 있어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있을텐데... 그

렇지만 일찍 포기하진 말아요. 오늘 배가 뜰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어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러나, 오늘 역시도 배가 뜨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었

다. 굳이 바다를 내다보지 않아도, 파고를 가늠해 보지 않아도 묶여 있었던 그동안의 경험으

로 미루어 바람의 세기와 창문이 덜컹거리는 정도만 갖고서도 웬만큼은 알 수가 있었던 것

이다.

어쨌거나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두 잡지사의 일은 간신히 해결을 보았다. 그

러나 문제는 불란서 가는 일이었다.

두 잡지사 중 한 잡지사는 마침 여분이 있다기에 일부는 그걸 사용하고 모자라는 것은 이

미 실렸던 그림 중에서 내용에 크게 반하지 않는다 싶은, 그러니까 추상적인 그림들을 택해

어느 한 부분을 확대 편집해 사용하도록 했고, 다른 한 잡자사는 집의 어머니께 전화를 해

놓겠으니 내 집에 가서 뒤적여 가라고, 찾아보면 쓸만한 것들이 꽤 있을 거라고, 물론 새로

그려줘야 마땅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이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양해를 구하겠노라고, 돌아가면 술 한잔 사겠노라고, 화 나지 않게, 그쪽 편집장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그 동정심(?)을 자극할 수 있도록 절절한 목소리로 말을해서 그러겠노라

는 답을 얻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불란서에 가는 일도 그렇다. 내가 처리해야 되는 많은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떠 넘

기고서 수시로 전화연락을 한 끝에 나와 내 여자는 그저 짐만 챙겨 공항에 나가기만 하면

되도록 해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배가 뜨지 않고,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태풍까지 올

라오고 있다면 불란서고 뭐고가 없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렇게 된다면 도리가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저쪽에 가서 내가 해야 될 일도 이쪽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

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 여자였다. 나야 그동안 해외나들이가 종

종 있었더랬지만 내 여자로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 있는 부부동반 해외나들이에 내

여자는 진작부터 들떠 있었다. 사실, 바다는 그저께 보다는 어제가, 어제 보다는 오늘 아침

이 잔잔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늘은 배가 뜰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판단

으로는 오늘도 배가 뜨지는 못할 것이고, 거기다가 태풍까지 올라오고 있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다. 잘못이라면 그렇게 해외나들이를 앞두고서 남해안을 한바퀴 돌자고 길을 나

섰던 것이고, 또한 거기다가 예정에도 없던 홍도까지 흘러 들어왔다는 것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