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마당에 그런 것들을 되짚어서 무슨 소용이겠으며 일찍 포기하고 마음이나 느긋하게 먹는 게 나을 것이지만, 그래도 역시 걸리는 것은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다만 오늘 내일이면 돌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그리하여 아직도 불란서에 갈 꿈에 부풀어 단잠에 빠져 있는 내 여자였다.
“얘는 아직도 자고 있나?”
처남댁이 꺼내주는 마늘통을 까며 처남이 말했다.
“원래가 아침 잠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그래도 조금 있으면 건너오겠지요.”
“걔가 나를 닮아서 그러나? 태평하기는...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야.”
“형님, 이따가 건너오더라도 아직 태풍 얘기는 하지 말아 주세요. 오늘 내일은 배가 뜨리
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데.”
“일어나면 어차피 알게 될 텐데 뭐.”
“그래도요. 비록 알게 될 때 알게 되더라도 지금은 그냥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그러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러. 내 생각에는
오늘은 배가 뜰 수 있을 것 같다구. 왜 그 절묘함이라는 것도 있잖아. 아직 태풍이 저 아래
에 있으니까 오늘 배가 떠서 우리가 빠져나간 다음에 태풍이 내습하는 거야.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다시 발이 묶이고.... 그때야 이미 빠져나가야 될 사람 다 빠져나갔으니 배가 뜨지
않는다 해도 크게 상관 없는 일 아니겠어?”
“글쎄요. 제 생각에는 오늘도 배가 뜨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안된다는 쪽으로만 생각지 말라구. 사람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그러면서 처남은 자료들도 전송받을 겸 배가 뜨는지를 알아보고 오겠노라고, 밥이 다 될
때까지 올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도 함께 갈까 했으나 내 여자 대신
처남댁을 거들겠다고 그냥 남아 있었다.
그런데 한참 만에야 돌아온 처남은 배가 뜨는지에 관한 이야기 보다도 302호의 빨간셔츠가
없어져서 난리라는 이야기부터 꺼내놓았던 것이다.
“지금 밖에서 302호의 아줌씨들이 왜들 저러는 줄 알아? 어젯밤 그 빨간셔츠가 없어져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거야.”
그때쯤 내 여자도 샤워를 마치고 건너와 있었는데, 비가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02호의
아줌마들이 밖에 나와 두런거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그저 그러려니 여기고 내다보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하고 보니 늘 깔깔대고 장난질이던 모습의 그네들이 아니고 뭔가 걱정스럽
고 무거운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빨간셔츠가 없어져요?”
순간 여자와 나는 저도 모르게 서로의 열굴을 마주보았다.
처남은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