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한테는 친척집에 간다고 하고서 몰래 왔는데 큰일 났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면 남편이 작대기로 후려칠 게 뻔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놀기는 가장 걸판지게 놀았다. 어디를 우르르 몰려다녀도 맨 앞장을 서는 것이 빨간셔츠였다. 어젯밤에도 그러했다. 그네들은 해수욕장쪽의 매가도란 횟집에서 한판 걸판지게 놀았다. 매가도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붙힌 홍도의 또 다른 지명이라고 했다. 모두들 술이 거나하고 노래방기기는 귀청을 찢을 듯 했는데 마이크는 대부분이 빨간셔츠가 잡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지 않을 때는 걸지게 춤을 추어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인지 거기에는 땡중도 끼어 있었다. 빨간셔츠가 땡중을 가만 놔둘리 없었다. 물론 땡중 역시도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지만 빨간셔츠는 그 땡중을 일으켜 세워 춤을 추게 하고 익살스럽게 그 삭발한 머리통을 어루만지거나 끌어안기도 했다. 말하자면 집에 돌아가서 남편에게 작대기로 후려맞아도 일단 놀고 보자는 식이었을 것인데 거의 발광에 다름 아니었다.

우리는 빨간셔츠의 걸진 웃음을 뒤로하고 여관을 빠져나와 관리공단사무소 쪽으로 올라갔

다. 사무소는 선착장에서 갈라지는 두 갈래 길을 서로 연결시키는, 그러니까 역삼각형의 윗

변에 해당하는 길가에 위치해 있었다. 그 길에는 농협도 있고, 우체국도 있고, 단독 건물로

는 섬에서 가장 큰 건물인 교회도 있었다. 거기서 보면 선착장이며 바다, 그리고 마을 전체

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가파른 지형에 마을이 형성돼 있어서 마치 층계의 한층 마다 성냥갑

세우듯 건물들을 세워놓은 모습이었다.

관리공단사무소에는 마침 소장이 없는 가운데 직원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좀더 자

유롭고 편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고 학교를 다녀 관리공단에서 일하게 됐다는 그

직원은 처남이 어떻게 구워 놨는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처남을 대했고, 또

한 처남이 소개시키는대로 우리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리를 권한 뒤 음료수

까지 내어놓는 것이었다.

처남은 그 직원과 얼마 동안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눈 뒤 자신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자료들을 전송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두장이면 되는줄 알았던 그 자료들이 끝없이 이어

졌다. 더군다나 전송되다가 중단되면 다시 전화를 걸어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고 다시 전송

받고 하느라 꽤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는 처남댁과 함께 슬그머니 그곳을 빠져나와 해수욕장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비가 그쳐 보도블럭은 꾸들꾸들 말라가고 있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

래서인지 바다 위의 대기는 온통 희뿌옇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