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제시한 사진은 천도교 3대교주이자 3·1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이신 손병희 선생께서 어려웠던 시절에 1년여 거처하셨던 집이다.
지난 겨울 어느 날 천도교 교서편찬위원으로 있는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당진에 모동 또는 저동이라는 곳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의 전화였다. 사연을 물은 즉, 천도교교회사에 보면 손병희 선생께서 1898년 8월부터 1899년 10월까지 1년 2개월간 당진 모동에 거처하셨다는 기록이 있는데 찾고 싶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조사하여 모동(茅洞)이 수청리의 띠울임을 알아내어 알려주고는 모동에 가서 구체적으로 조사해 볼 요량으로 그 집을 찾는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없느냐니까 천도교교회사에 따르면 집 앞에 우물이 있었는데 낙엽이 쌓여 있고 물이 말라 있어 손병희 선생께서 낙엽을 치우고 손질하니 물이 잘나서 청수로 사용했는데 손 선생께서 떠나고 나니 물이 다시 말랐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 찾아보리라 마음에 다짐하였지만 지난 겨울 추위가 혹독하여 차일피일 미루다 나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시청 문화재 담당 남광현 주사로부터 이종린 선생 생가와 손병희 선생 거처지를 묻기에 이종린 선생 생가는 알지만 손병희 선생 거처는 마을까지만 알고 구체적인 장소는 모른다고 하니 시간을 좀 내어 이종린 선생 생가도 안내해 주고 손병희 선생 거처도 함께 찾아보았으면 좋겠다는 제의가 있어서 지난 6월 19일 만나서 띠울에 들어가 수소문 한 끝에 찾게 되었다.
당진에는 천도교와 관련된 유적이 몇 군데 있으니 동학군이 일본군에 대승을 거둔 승전목이 있고 천도교 교령을 지낸 이종린 선생의 묘소와 생가가 있었는데 6월 19일 가보니 생가는 관리가 안 되어 허물어져버려 마음이 아팠다. 손병희 선생의 옛 거처도 대나무가 방안에 자라 천정까지 닿아있는 형편이니 그냥 두면 얼마 안가 허물어질 형편이었다. 조만간 수용될 땅이라 하니 시에서 보존 대책을 강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