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이 지은 ‘시(詩) 다시 읽기’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수수께끼가 있다.
‘남자에겐 있고 여자에겐 없고, 뱀에겐 있고 개구리에겐 없고, 삼촌에겐 있고 형에겐 없고, 엄마에겐 있고 아빠에겐 없는 것은 무엇인가?’
재미있는 수수께끼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가끔 써먹어 보지만 아직까지는 제대로 맞히는 사람을 못 보았다. 해답은 미음(?)자다. 우리가 이 수수께끼를 쉽게 알아맞힐 수 없었던 것은 일상적인 관습에 얽매어 말 자체의 형식이 아니라 이 말들이 가리키고 있는 개념에서 답을 찾으려고 집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범하는 잘못은 많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 면천읍성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는 돌이 있다.
沃 長 四
己 川 六 寸
未 始 十
年 面 尺
물론 내리읽도록 쓰인 것이다. 1995년 6월 4일 호서고등학교 김남석 선생과 함께 면천읍성을 답사하는 과정에 발견한 것인데 한문의 종서(縱書)는 오른편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맨 오른쪽 사촌(四寸)에 걸려서 해석을 못하고 오래도록 낑낑대고 있었다. 四寸이면 네 치인데…
그러던 중 1996년에 어떤 대학 교수가 다음과 같이 해석한 것이 어느 책에 소개됐다. ‘옥천 사람들이 기미년에 4치 크기의 돌로 길이 6천자의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다.’
오른편에서부터 읽되 첫 두 줄을 먼저 읽은 것이다.(여기서 6천은 六十을 사진으로 보는 과정에서 六千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 이 성은 전체 길이가 면양읍지라는 옛 문헌에 3,235 척으로 되어 있다) 4치 크기의 돌로 쌓았다면 돌의 크기가 균일하다는 뜻이 되는데 성돌은 자연석을 갖다 쓴 것이므로 그 크기가 다양하다. 한 변의 길이가 2m 가까운 것도 있는 반면에 30여cm 정도의 것도 있다. 4치 크기의 돌로 성을 쌓았다는 것은 수긍이 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발견된 글자가 새겨진 돌은 3개였는데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그러면서 고심을 했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이 새겨진 돌의 사진에 눈이 멈추었다.
鎭 始
岑 面
곰곰이 생각하다가 사진에서 번개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왼편부터 읽어야 하는구나’였다. 진잠은 인력을 동원한 군현 이름이고 시면은 시작한 면이라는 것이니 진잠에서 쌓기 시작한 면이란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예의 옥천 것도 쉽게 풀렸다. 기미년 옥천이 여기서 시작해 길이 60자 4치를 쌓았다. 4치를 60척 다음에 붙여 읽으면 되는 것을 그렇게 고심했던 것이다.
우리는 고정관념에서 생각의 각도를 조금만 돌리면 쉽게 볼 수 있는 것을 눈의 각도를 고정시키고 보기 때문에 조금 옆으로 비켜나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회현상을 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가끔 내 관념의 틀이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정관념은 달걀의 껍질과도 같다. 껍질을 깨면 달걀은 죽는다. 하지만 이것도 만고불변의 진리는 될 수 없다. 병아리가 나오려면 달걀의 껍질을 깨지 않으면 안되는 것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