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스토예프스키가 말년을 보냈던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에는 그의 기념관이 있다. 그 기념관의 서재 책상에는 촛대와 잉크, 철필, 교정쇄 등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과 함께 찻잔이 놓여있고 그 찻잔에는 생전에 즐겨 마시던 홍차를 매일 채워놓는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우리 지역에도 문인들의 발자취가 몇 군데 남아있다. 심훈이 당진에 내려와서 필경사를 지을 때까지 머물며 『영원의 미소』 『직녀성』 등을 썼던 그의 아버지가 살던 옛집이 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가 있으며 시인 윤곤강의 아버지가 살던 집과 윤 시인이 1944년부터 광복될 때까지 당진면에 근무하면서 살던 집(계성초등학교 후문 앞에 있었으나 몇 년 전 도로가 확장되면서 헐렸다)도 있었다.
이 유서 깊은 건물들은 필경사를 제외하고는 방치하거나 심지어 헐려버렸고 관리가 되고 있는 필경사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필경사에 그의 손때가 묻은 물건은 없다. 관리한다는 것이 낯뜨거운 일도 없지 않다.
필경사 앞에는 그의 기념관으로 쓰고 있는 건물이 한 채 있고 그 건물 앞에는 그 유명한 항일시 「그날이 오면」의 시비가 있다. 이 시는 우리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다. 옥스퍼드 시학 교수인 C.M 바우라의 저서 『시와 정치』에 전문이 게재된 시인 것이다.
그런 이 시를 필경사 앞의 시비에는 잘못 새겨 놓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2연으로 된 시인데 둘째 연을 첫째 연에 붙여 놔서 1연의 시처럼 되었을 뿐만 아니라 2연 첫 행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를 오오 두 글자를 빼고 ‘그날이 와서 그날이 와서’로 새겨놓았으니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 필경사에는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그리고 언론매체에서도 가끔 찾아온다. 가끔 안내를 하기도 했는데 여간 얼굴 뜨거운 일이 아니다. 이런 시비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망한 것이 또 있다. 필경사 앞 광장 입구 쪽에 상록수를 상징하는 두꺼운 철판으로 만들어 세운 구조물이 있다. 제작한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철판의 내구 연한은 적어도 천년은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구조물에는 ‘그날 쇠가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오라’고 새겨져 있다. 이 내용을 생각해보면 ‘그날 천년이 가기 전에 오라’ 이런 의미가 된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르는 그날이란 어떤 날일까? 이 구조물이 세워진 곳이 필경사 경내이고 구조물이 상징하는 것이 심훈의 소설 상록수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그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심훈의 항일시 ‘그날이 오면’일 것이기에 쉽게 심훈의 ‘그날의 오면’의 그날을 떠오른다.
심훈이 절규했던 ‘그날이 오면’에서의 그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조국 광복의 날이다. 그리고 그날은 이미 60여 년 전에 와있다. 오늘날 우리가 절규하는 그날이 있다면 그것은 통일의 그날일 것이다. 만약 심훈이 오늘날 살아있어서 그날이 오기를 갈망한다면 틀림없이 통일의 그날일 것이다. 앞에 말한 구조물에 새겨진 내용을 재구성한다면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될 것이다.
‘통일, 천년이 가기 전에 오라’
이렇게 말해도 좋은 것인가? 항일 작가 심훈의 영혼이 깃들여 있을 필경사 경내에 이렇게 새겨놓아도 좋단 말인가!
이제라도 우리는 선인들이 물려준 문화유산들을 좀더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세워야 할 것이다. 오늘은 따끈한 홍차보다 소주 한잔이 생각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