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흥덕초등학교 앞 32번 국도를 따라 구양교 쪽으로 가다보면 옥금리 미곡처리장이 오른쪽에 보인다. 그곳을 지나 100m쯤 더 가면 오른쪽 첫 번째가 김흥태 씨가 사는 곳으로 당진시 합덕읍 덕평로 43번지다.
문을 열고 웃으며 맞이하는 모습에서 과거의 고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김흥태 씨는 18세 때부터 무엇을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이곤 했다. 술 끊은 지는 17년이 됐고 담배 끊은 지는 10여 년째다. 내 명에 못살 것 같아서 끊었다고 말했다.
건강검진을 했고 위암이라는 판정이 나왔는데 가장 어려웠을 때가 항암치료 할 때였다.
살이 거의 없다시피해 사람만 알아볼 정도였고 유언을 남기는 식으로 이야기 하곤 했다.
7년 전 2005년 항암 치료할 때 신체 외부의 털이 빠져나가는 극심한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김홍태 씨는 “병간호하던 아내(김은자 56세)가 ‘죽지 말고 살아만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아내가 고생 많이 했지 아내 생각하면 눈물이 나와” 하면서 눈가에 손을 가져갔다.
그런 아내에게 쑥스러워 사랑한다는 말을 아직 못했다.
75kg까지 나갔던 몸무게가 48kg까지 내려갔었고. 제일 어려운 것은 3년간이 고비였으나 그 후로 차츰 좋아졌다고 말하고 결혼하기 전 데이트할 때 하고 결혼할 때 그리고 아이들 키울 때가 어렵지만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대건산악회에 다니면서 산 정상에 오를 때마다 공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명산을 여기저기 다니며 마음 한쪽 구석에 부족함을 느낀 그는 공부를 시작했다.
“방송통신고 2학년 때인 2005년 통신고 학생회장으로 선출됐는데 학교에 가기 힘든 상황에서 학생회장 임기를 채웠다.
2007년 신성대 정규입학을 했는데 2학년 1학기 8월 중순경 그에게 또 시련이 찾아왔다.
논에서 이른 벼에 약을 주려고 경운기를 운전하며 가는데 승용차가 앞지르기하면서 경운기에서 떨어지고 농약을 실은 경운기가 김흥태 씨 다리 위를 지나가는 사고가 생겨 다리가 으스러졌다.
119를 불러 병원에 입원하고 1년간 치료를 받았는데 6~7급 장애가 나왔다. 2학기 등록금을 내고 사고가 난 상태, 김흥태 씨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현재 이상 징후가 없는 김흥태 씨는 신협산악회의 권유를 받아 지금은 서해중앙신협 산악회 11반 회장이며 첫 산행을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해발 587m)를 10년 만에 올랐고 지난 3일에는 해발 778m를 등산하는 기쁨도 있었다.
현재의 일상생활은 수술 전이나 수술 후나 똑같다고 말했고 산에 오르는 것은 앞으로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생각이다.
식사할 때 생선은 먼 바다 생선을 먹는다. 해변 연안 고기는 덜 먹고, 과로하지 않고 동태 또는 오염 덜된 것들을 먹는데 그것은 의사의 권유를 따른 것이다.
지금은 병원에 가면 일반 환자 취급을 한다. 비싼 병원비가 부담이 된다고 했다. 항암 검색기 한 번 검색하는데 100만 원 정도 든다. 거기에 혈액검사비 등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지금은 특별하게 계획한 것은 없다. 젊었을 때 야망보다 지금은 건강하고 아무 탈 없이 살고 싶은 소망뿐이다.
김석준 시민기자 k362900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