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산면 무수리에서 3대에 걸쳐 한평생을 살아온 김성권씨. 그는 기자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우리 지역 참 아름답죠?”라며 송산 자랑부터 늘어놓았다. 소나무와 동산 등을 의미하고 있는 松園(송원)이 자신의 아호라고 밝힌 김성권씨는 그야말로 자연과 벗 삼고 있었다.
현재 부인과 함께 조그마한 밭을 일구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송산농협조합장 12년, 제2, 3대 당진군의원을 지냈다. 그는 12살에 사서삼경을 뗀 것이 할아버지의 덕이라며 그를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조부는 마을에서 훈장으로 지냈다.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가 4학년이었어요. 막상 학교에 가니 국어를 전혀 모르는 거에요. 하지만 한문을 많이 알고 있었기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죠.”
조부의 가르침으로 한문에 조예가 깊은 그는 서예가로도 활동 해 제22회 국제문화대전에서 특선, 제1회 한국서화대전 특선 등 각종 서예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방안은 자신이 직접 지은 한시와 서예 작품들, 감사패와 공로패 등으로 가득했다.
또한 2011년 당진노인대학 학장을 역임했던 그는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며 당진 내 노인대학과 초등학교의 방과 후 교실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 “경기도 지역의 노인대학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오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멀리까지 못 간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초야에 묻혀 있는 군자’라고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김성권씨는 노인 복지와 시 행정 등에 대한 관심도 내비췄다.
“당진군이 당진시가 됐지만 주민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없는 것 같아요. 기업이 많이 들어와 경제적으로 좋아졌을지는 몰라도 공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주민이죠. 당진시가 되어 좋아진 것은 세금을 많이 가져갈 수 있는 정부뿐이라고 생각해요. 정부는 복지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는 <당진시대>가 “당진 시민의 손과 발, 귀가 되어야 한다”며 “언론이 시 행정의 실체를 철저하게 알아야 독자들의 눈을 밝혀주고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당부했다.
군의원으로 재직 당시 불미스러운 일로 군의원을 내려놓았다는 그는 “그 일에 <당진시대>도 일조했다고 생각해 그동안 달갑게 보지 않았다”며 “극성스러운 쪽의 이야기가 가장 잘 전달되지만 ‘삼사일언’의 자세로 편견을 갖지 말고 바로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보람 인턴기자 sbr878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