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자골목, 대덕수청지구 개발이어져
시도 1호선이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대덕2통은 당진시내의 입구에 위치한 마을이다. 대전·당진간 고속도로 면천IC가 개통되면서 시도 1호선을 이용해 당진시내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10년 전만해도 대덕2통은 도심 외곽에 자리한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는 조용한 농촌마을이었다.
“한 10년쯤 됐지?”
“그려 많이 됐다 해도 15년 사이여~”
“예전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골마을이었지. 대게가 농사짓고 살고. 마을 가구수가 90호나 됐으려나.”
대덕2통이 번화하기 시작한 때는 마을 입구에 지금의 먹자골목이 생기면서부터였다. 지난 1998년 읍내·대덕리 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된 이후 지금의 대덕2통 먹자골목이 들어섰다. 그 무렵 대덕2통에 빌라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덕수청지구 택지조성 사업이 시작됐다. 10여년 사이에 일어난 일대의 개발로 현재 대덕2통 가구수가 1200세대에 이르고 있다. 10년 사이에 1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송정, 신구실마을, 13개반
‘대덕’이라는 지명은 ‘산이 사방으로 둘러 싸여 다락처럼 되어 외적의 침해가 전혀 없는 복이 많은 지역’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대의 마을을 병합해 대덕리라 했다. 대덕2통 어르신들은 “대덕1통을 원대덕이라 불렀고 대덕2통은 송정리라 불리었다”며 “큰 소나무가 있어서 송정마을이라 불렀고 그 이전에는 신구실이라 불렀다”고 말했다.
대덕2통은 가구수가 늘어난 만큼 반도 세분화되어 총 13개반으로 이뤄져 있다. 먹자골목이 위치한 1반은 토곡이라 불리었는데 내년 1월 1일자로 먹자골목일대가 대덕3통으로 분리될 예정이다. 마을회관 반대편에 자리한 2반은 양지말이라 불리었고 면천으로 넘어가는 눈티고개 아랫마을인 3반은 논티말, 눈티골이라 불리었다. 마을회관이 자리한 곳이 안말이라 불리는 4반이다. 송정저수지가 있는 5반은 담(비)들기라 부른다. 6~13반은 약수빌라, 엘림빌라 등 빌라들로 이뤄져 있다.

약수빌라 앞 약수터
대덕2통 주민들은 마을주변이 개발되기 전 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허나 농토가 많지 않아 지하수를 이용하기 전에는 천수답이 많았다 한다. 새마을운동으로 송정저수지가 생긴 뒤에도 마을의 식수나 농업용수가 부족해 여전히 대다수 주민들이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다.
헌데 대덕2통에도 물이 샘솟는 곳이 있어 당진시내 사람들도 물을 길러 오던 시절도 있었다. 대덕2통 빌라들 중 가장 먼저 들어선 약수빌라가 바로 그 약수터 자리다.
“약수빌라 앞에 샘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읍내에 사는 처자들이 와서 멱도 감고 물도 길어가고 했었지~.”
한편 마을 곳곳에 공장이 들어서 마을 주민들이 품을 팔러 다녔다고.
“지금은 서진산업 사원주택을 짓는 자리가 대덕석회 광산이었지. 옛날에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 주민들이 광산에서 품을 팔아 요긴하게 먹고 살았지. 그뿐인가, 엘린빌라 앞에 광산이 하나 더 있었지.”
[편집자주]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시작한 ‘경로당을 가다’가 농번기로 넘어오면서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70, 80대 어르신들도 평생 업으로 삼았던 농사에서 손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농촌에 젊은이가 많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여전히 경로당은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른 아침 일찌감치 논과 밭을 둘러보고 햇볕이 강렬해지는 한 낮에는 경로당에 모여 한 숨을 돌리고 농사에 대한 정보도 나눈다. 경로당을 찾아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부터 수십 년 전 마을의 옛 모습과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옛날을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 지금 듣고,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작지만 소중한 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기억으로 쓰는 마을의 구술사’ 신년기획 ‘경로당을 가다’를 시작하게 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