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아래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양희정(75), 조기순(75), 이명희(80), 정연희(73), 안승녀(78), 황월자(75), 전화용(75), 박영수(77), 김덕근(73), 표순옥(72), 김순분(72), 노인회장 장재룡(73), 정순희(75), 김종순(77), 임상녕(72)
▲ 왼쪽 아래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양희정(75), 조기순(75), 이명희(80), 정연희(73), 안승녀(78), 황월자(75), 전화용(75), 박영수(77), 김덕근(73), 표순옥(72), 김순분(72), 노인회장 장재룡(73), 정순희(75), 김종순(77), 임상녕(72)

[편집자주]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시작한 ‘경로당을 가다’가 농번기로 넘어오면서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70, 80대 어르신들도 평생 업으로 삼았던 농사에서 손을 놓지 못 했기 때문이다. 농촌에 젊은이가 많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여전히 경로당은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른 아침 일찌감치 논과 밭을 둘러보고 햇볕이 강렬해지는 한 낮에는 경로당에 모여 한 숨을 돌리고 농사에 대한 정보도 나눈다. 경로당을 찾아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부터 수십 년 전 마을의 옛 모습과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옛날을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 지금 듣고,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작지만 소중한 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기억으로 쓰는 마을의 구술사’ 신년기획 ‘경로당을 가다’를 시작하게 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30년 전만해도 바닷물이 들어오던 천의1리 1반. 정미면사무소를 비롯해 소방서, 경찰서, 우체국, 농협 등 주요 기관단체의 정미지점이 위치한 천의1리는 명실상부 정미면의 중심마을이다. 교통편이 좋아져 각종 편의시설이 당진시내로 집중되면서 읍면소재지 경기가 침체됐다. 정미면 천의1리로 예년에 비하면 한산하다는 게 경로당에 모인 어르신들의 말.

“지금도 정미의 중심이기야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참 많이 쪼그라들었지. 예전에 오일장이 설 때면 정미는 물론이고 대호지, 고대에서도 정미로 장을 보러 왔었어. 우시장도 열릴 정도였으니까.”

“말해 뭐하나. 장날이면 사람 참 많았지. 지금은 장옥 중에도 빈집이 여러채여. 미호중학교에도 학생들이 많았는데 점점 줄어들더니 폐교가 됐어.”

“교통편이 좋아진 대신에 천의오일장이 사라졌고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고 이제 천의1리에도 노인들이 더 많아.”

면소재지인 천의1리에는 40여년 전만해도 오일장이 섰다.

천의장터에는 식당이 줄을 지어 문을 열었고 거리마다 행상이 진을 쳤다.

4일과 9일에 열리는 천의장에는 우시장도 설만큼 규모가 컸다. 한 때는 인근 당진장이나 고대장보다 더 번화하기도 했다는 게 어르신들의 이야기다.

▲ 40년 전만해도 5일장이 서던 천의장터 모습. 바닷가 마을이던 시절 이야기

대호만방조제가 놓이기 전까지 천의1리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천의삼거리 앞이 갯벌로 주민들은 바다에 나가 망둥이를 잡고 굴이나 게도 잡았다. 바닷가를 거닐며 놀던 추억은 천의1리 사람뿐 아니라 당진 토박이들에게도 남아 있다.

천의2리에는 배도 정박했었다. 인천을 오가는 배가 적서리에 닿으면 다시 적서리에서 도이리를 거쳐 승산리, 천의리까지 작은 배로 사람을 실어 날랐단다.

“천의리 뱃터에서 사람도 실어 나르고 뗄감도 날랐지. 연탄이 없던 시절에는 솔방울을 비롯해 뗄감을 해서 인천으로 실어 날랐어. 인천에 갈 때도 천의1리를 모두 거쳐가야 했었어.”

천의1리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4.4만세운동이다. 하지만 경로당에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은 계시지 않았다.

“생생히 기억하는 어른들은 다들 돌아가셨지. 우리가 기억하는 건 6.25때여.”

“6.25 무렵에는 우리 마을에 경찰지서가 있어서 경찰들이 사람들을 줄로 묶어서 등너머로 총살하러 가는 것도 여러번 봤어.”

“나도 봤지. 갯가로 데리고 가기도 했었어. 해방됐다고 동네 어른들이 풍물을 쳐가면서 만세를 불렀던 기억도 나. 내가 12살 때였지.”

▲ 4·4독립만세운동 기념탑이 세워진 천의삼거리. 딸만 낳게 된다는 느티나무

천의1리는 6개반으로 이뤄져 있다. 대호만이 막히기 전까지 바닷가였다는 천의삼거리 앞 하천부터 천의장터까지가 1반이다. 장터 동쪽에 있는 2반은 모새골이라 불리는데 전에 무쇠를 다루던 곳이 있었다 하여 무쇠골, 무쇳골, 모새골로 불리었다고. 3반은 천의초등학교 부근으로 숭늉골이라 불린다. 용이 누워서 자는 형국이라 하여 이름붙었다고 전해진다.

4반은 운산으로 가는 길목으로 독골이라 불린다. 독골을 중심으로 아래독골, 윗독골로 나뉘는데 윗독골에는 400년된 느티나무와 150년 넘은 느티나무가 아직도 푸른 수세를 자랑하고 있다. 옛날에는 느티나무를 건드리면 딸만 낳는다는 설이 전해지기도 했다고.

특히 4반 독골고개는 마을 아낙들에게 많은 추억이 서린 장소다. 경로당에 모인 할머니들은 “버스도 없고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던 시절에는 여자들이 고생을 참 많이 했다”며 “이맘때면 당진장에 가서 배추랑 무 모를 사서 머리에 이고 독골고개를 넘어 다니곤 했다”고 말했다. 천의1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옥녀봉이 솟은 곳도 독골이다.

5반은 천의초 후문 부근 마을로 돌이 많아 돌담이 마을로 불리며 6반은 정우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근래에 새로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