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가을비가 내린 덕에 매방리 어르신들이 잠시 가을걷이를 멈추고 경로당에 모였다. 어르신들은 벼 작황이며, 밭작물 수매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
“올해는 흉년이여. 수확량이 확연히 줄었어.”
“날씨 때문이여. 봄에는 좀 가물었는가. 게다가 태풍도 여러 차례 왔지.”
마을 앞뒤로 산들이 병풍을 친 매방리는 분지형태에 가깝다. 마을 주민들은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논, 밭 작황률은 반반이다.
“밭농사로는 꽈리고추가 많지. 양배추도 특작 중 하나고 나머지는 감자며 무, 배추, 마늘 같은 것들을 골고루 심는 편이여.”
물이 귀했던 시절, 매방리 논들도 대부분이 천수답이었다. 갈티저수지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농민도 있었지만 저수지가 작아 마을 전체에 공급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주민들은 천의리로 흘러 나가는 염솔천 곳곳을 막아 논과 밭에 물을 댔다고. 지금은 대호만에서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짓고 있다.
정월대보름에 지내는 산신제
지금은 매방리 사람들의 주업이 농사이지만 대호방조제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마을 앞 갯벌에 나가 굴이며 바지락을 캤다.
“우리 마을 사람 중에 갯벌에 안 나간 사람이 없었지. 농한기에는 모두 갯벌에 나가 낙지며 조개를 잡아다 먹었어. 우리 마을 앞까지도 바닷물이 들어왔었다고.”
바다가 막힌 뒤 갯벌은 사라졌다. 사라진 건 갯벌만이 아니다. 대산석유화학단지로 가는 송유관 건설로 마을의 큰 산도 잘려나갔다.
“갈티고개라고도 하고 사관리재라고도 혀. 송유관을 묻는다고 산을 끊어버렸지. 지금은 포장된 길이 생겼어.”
“그 산을 잘라낸 뒤 마을에 흉흉한 일이 생기는 거여. 공사를 하다가도 사람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동네 젊은 사람들도 연달아 죽어나갔지. 산을 파헤쳐서 산신령이 노했다는 소문이 돌았어. 그래서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서 산신제를 지내기로 했어.”
1990년초부터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은 정월대보름이면 사관리재에 모여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산신제를 지낸다.
정미 최초의 학교, 정미초등학교
매방리는 정미면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러하다보니 정미면 소재지인 천의리보다 먼저 학교가 들어섰다.
천의리에 자리한 천의초등학교도 매방리에 위치한 정미초등학교의 분교로 시작했다.
매방리 경로당에 모인 어르신들은 모두 정미초등학교를 졸업한 동창생이었다.
“정미에서는 정미초등학교가 가장 먼저 생긴 학교였으니까, 근방 아이들은 모두 정미초등학교를 다녔지.”
올해로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이 학교에 다닐 적에는 학생 수가 많아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공부를 했단다.
어르신들은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면서 학생 수가 많이 줄었다”며 걱정했다.
학창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어르신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학교에서 신사참배를 했던 기억도 꺼내 놓았다.
“학교 안에 신사를 만들어 놓고 아침에 전교생이 모여 참배를 했지. 내가 육성회장을 했던 30년 전만 해도 신사가 남아 있었어. 그런데 당시에 새로 부임해온 교장이 부숴버렸지.”
염솔경로당의 유래
매방리 경로당은 염솔경로당으로 불린다. 한때는 인근 6개 마을 노인들이 모두 모이는 정미면 최초의 경로당이라는 게 마을 어르신들의 말이다.
“요즘은 마을마다 경로당이 있지만 염솔경로당이 처음 지어졌을 때는 인근 6개 부락 사람들이 모두 매방리에 모였어.”
“지금 우리 경로당 회원이 140명인데 할머니들 방이 너무 작어서 쪼그리고 앉아야 겨우 들어갈 수가 있어. 시에서 예산을 들여 경로당을 신축해 주었으면 좋겠어.”
매방리는 4개반으로 이뤄졌다. 1반은 몽매울이라 불리는데 옛날에 매화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정미초가 자리한 2반은 칡이 많아 갈티(갈틔)라 불리고 3반은 발양, 바리방이라는 지명이 내려온다. 4반은 비새, 벼새, 비조 등으로 불린다. 이밖에도 여우골, 군개, 언미실, 작새울, 참샘이, 장승백이, 둥궂재, 이꾸지 등의 지명이 내려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