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명예와 의무라는 의미의 프랑스 말이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말은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의 내각 1호 인사인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가 결국 낙마했다. 언론에서는 새 정부 초대 총리 지명자가 자진 사퇴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호들갑이다. 장애의 한계를 극복하고 헌법재판소장에까지 오른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주목받았던 김 지명자가 두 아들의 병역 문제와 고액 부동산 증여, 수십억의 차액을 남긴 부동산 투기 의혹 등에 휩싸이면서 문제가 됐다. 국민은 양파껍질 벗겨지듯 한 꺼풀 한 꺼풀 나오는 의혹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한 당선인이 직접 한 인선은 아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협의를 거쳐 임명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특수업무경비 횡령 의혹 등 갖가지 도덕성 논란을 겪다 아직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족의 최대 명절 설날이 다가오지만 “자동차 부품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곳에서 제가 버려지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차디 찬 철탑위에 올라가 수십 일째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서러움과 가난에 눈물마저 말라버린 비정규직 노동자의 마음은 또 어떨까?
필자가 11여년을 유학하며 둘러 본 유럽의 경우, 유럽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오늘날 유럽의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지탱해 온 정신적 뿌리이자 사회원동력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귀족들이 가장 먼저 전쟁터에 나가는 기사도 정신도 바로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때에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출신들이 가장 먼저 전쟁터로 달려가 2000여명이 전사했다. 얼마 전 영국 왕실 가족 중 왕위계승서열 3위이자 다이아나 왕세자비 둘째 아들인 해리 왕자가 위험하다고 국민들조차 말리던 이라크전쟁에 자진 참전했다. 지난 1982년엔 포클랜드전쟁에서는 해리 왕자 삼촌인 앤드류 왕자가 전투헬기를 몰고 직접 참가한 바 있으며, 해리 왕자 증조할아버지인 조지 6세 국왕도 1차 대전에 참전한 바 있다.
또한 유럽의 지도층들은 버는 만큼 자선과 기부를 생활화하고 있으며, 적법한 세금 납부를 고위층의 명예로 여겨왔다. 국민들은 이러한 지도층의 도덕성을 믿었고 존경이라는 방식으로 명예를 지켜주었다.
그러나 이번 김용준 국무총리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볼 때,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에게 과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우리나라의 지도층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부정부패 비리를 저지르는데 서슴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배만 불리는데 혈안이 되어 사회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손톱만큼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6·25전쟁 당시 우리 병사들이 빽이라 외치며 죽었다는 일화는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지도층들은 그래도 영어를 잘할 텐데, 유독 Republic(공화국)이 라틴어 어원에서 공(Public) 개념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 같다. 공화국 시민의 기본 요건인 병역과 납세 의무를 지키기는 커녕, 병역비리 의혹을 사고 탈세를 저지르며 나랏돈을 맘대로 주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차라리 우리 사회귀족들에게 귀족칭호를 떳떳이 붙여주도록 하자. 가슴마다 귀족휘장을 주홍글씨처럼 달고 다닐 수 있도록 공화국법으로 강제하자. 그러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조금은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국가의 리더는 반드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가져야 한다. 조직의 특권과 권력을 향유하는 데만 급급하고, 책임지고 봉사하고 헌납하기 싫어하는 지도자들이 이끄는 조직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 내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제대로 실천해온 사람들로 채워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