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줄이 용처럼 꿈틀댔다. 수백, 수천 명의 힘이 한데 모이자 20t이 넘는 줄이 조금씩 움직였다. 기지초등학교 앞 줄제작장부터 박물관까지 이어지는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壯觀)이었다. 줄을 옮기는 이는 물론이고 목이 터져라 “의여차” 구령을 넣는 대장, 흥겨운 장단으로 힘을 북돋는 농악대, 거센 바람에 펄럭이는 농기를 들고 앞서 걷는 기수까지 세 시간 동안 오로지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냈다.

2013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제가 지난 14일 줄다리기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축제에는 각 읍·면·동 별 씨름대회와 솟대경연대회 등 지역주민을 위한 행사는 물론이고 스포츠줄다리기와 농악대회 등 전국대회도 열려 타 지역민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유네스코 공동등재를 준비하고 있어 민속·전통 전문가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각지에서도 모여들었다. 세계 각국의 주한대사 부부가 방문했으며 줄다리기 국제학술대회도 개최됐다.

본격적인 기지시줄다리기가 펼쳐지는 마지막날은 그야말로 축제의 백미였다.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줄이 옮겨지는 과정부터 수상(윗마을)을 의미하는 숫줄과 수하(아랫마을)을 상징하는 암줄이 결합하는 모든 순간이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다산과 풍요, 지역의 안녕을 기원하는 경건한 의식이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김미영(서초동·37) 씨는 “기지시줄다리기는 주민화합, 대동단결의 집결체인 것 같다”며 “엄청나다. 매우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사람 손으로 줄을 꼬는 일부터 줄을 옮기고, 줄다리기로 승부를 가려내기까지 모든 과정이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이웃과 이웃의 도움이 절실했던 농경사회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전통으로 500년 간 이어져오고 있다.

[미니인터뷰] 박영규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제위원장

[미니인터뷰] 박영규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제위원장

“세계인 유산되도록 노력할 것”

“사람들이 ‘의여차’ 한 목소리를 낼 때는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모든 순간에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어요. 힘을 하나로 모으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박 위원장은 “흙먼지 날리는 그 곳에서, 태양볕 쬐가며 줄을 옮기는 중에도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다”며 “서로가 의지하며 자기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참여 행사에서 선수들을 위한 휴식공간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해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며 “내년에는 주민과 관광객 모두를 배려하는 축제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미니인터뷰] 정미농악대 강종순(정미면 사관리) 씨

[미니인터뷰] 정미농악대 강종순(정미면 사관리) 씨

“농악으로 힘주는 보람”

농악대로 함께한 강종순(65) 씨는 “전날 비가 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줄다리기를 하는 마지막날 하늘이 쾌청해서 기분이 참 좋다”며 “다소 바람이 많이 불고 춥긴 했지만 주민들과 흥겨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농악으로 힘을 돋울 수 있어 보람을 느껴요. 농악대 모두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줄이 끊어져 아쉽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줄을 옮기는 세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끊임없이 농악 연주를 해야 해 팔이 아프고 힘든 점도 많았다”면서 “그러나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축제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박영백(송악읍 기지시리) 가족

“줄 끊어져 아쉬움 남아”

“가족들과 함께 왔습니다. 당진에서 산지 20년 만에 처음 와봤는데 너무나 좋습니다.”

박영백(54) 씨는 아내 전종분(55) 씨와 인천에서 놀러온 딸 박현정(28), 사위 구경모(29) 씨와 함께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에 함께했다.

박 씨는 “축제현장에 사람들의 열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며 “활기찬 분위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살고 있는 마을이 속한 수상이 이겼는데 두 번째 판에서 줄이 끊어져 아쉽다”며 “내년에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