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충절의 표상 남이흥 장군과 연계된 사적지를 살펴본다.
[백상루:백가지 경치를 한눈에 볼수있다하여 붙여진 이름 평안도 관서 팔경중 제일 명소]
백상루에서 제향하던 평안병사 남이흥 장군은 1627년 정묘호란시 안주성에서 3만6000명의 청국 대군이 조선을 침공함에 3000의 군사를 이끌고 혼신을 다해 대적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수성이 불가하자 적을 화약고 있는 곳으로 유인 화약고에 점화해 많은 적과 함께 자분 순국 한다.
순국 직후 명나라 황제는 남이흥 장군을 그 나라 식민들에게 귀감토록 하는 특전 행사을 했으며, 침공한 청군대장 아민도 남이흥 장군이 화약고에 점화해 순국 모습을 보고 “조선은 충의의 나라라 하더니 과연 대단 하구나 내 두 눈으로 그 모습을 보았다”고 감탄하였다 한다.
남이흥 장군의 순국 소식을 들은 인조임금은 장군을 국장으로 장례 하도록하고 눈물을 흘리며 곤룡포를 벗어 장군의 관위에 덮어 주웠다. 곤룡포는 대호지면 도이리 충장사에 보존돼 있다.
정묘호란 안주성 전투 전황을 지켜본 평안도 안주시민들은 매년 자발적으로 모금해 백상루에서 55년간 제향을 했다. 제향에는 남이흥 장군을 위시로 당시 직급별로 하고 3000여 장졸(將卒) 모두에게 올렸다. 그후 숙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평안감사 유상훈, 평안병사 이세화가 임금께 상소해 왕명에 의해 건립 된 것이 평안남도 안주에 있는 충민사(忠愍祠)다.
상단 큰 건물에 남이흥 장군 신위, 좌측 건물 동무에 안주목사 김준, 구성부사 전상의, 우측동무 건물에 평안우후 박명룡, 강계부사 이상안, 용천부사 이희건, 좌측하단 서무 영유현령 송도남, 개천군수 김양언, 맹산현감 송덕영, 병조참의 김언수, 훈련병사북영장 한덕문, 좌측하단 서무 영유현령 송도남, 박천군수 윤혜, 호조좌랑 함응수, 동지중추부사 양진국, 천총 임충서가 위패봉안 됐으며 관급 제기고 비문이 있고 하단 큰 건물에 3000 전몰군사 전원을 제향했다 한다.
충민사 비문은 영의정 최석정, 영중추부사 남구만, 이조판서 조상우가 전서 찬한 비문이 있다.
현재 충민사(忠愍祠)가 원형보존 돼 있으며 북한 국가지정문화재 제740호로 지정돼 있다.
그시기에 이곳 당진에 불천위 사당 충장사와 양세충신정려 종가가 건립 됐다 전해진다.
장군께서 원수의 위치에서 살신위국 함은 세계 어느 전란사에도 보기 드문 일이며 이러한 정신이 민족자존 애국 충절의 정신이 아닌가.
충절에는 한 임금을 목숨걸고 섬긴 충절이 있고 불의에 항거하다 목숨바친 충절도 있으며, 국난을 당해 죽음으로 민족과 국가를 수호한 충절이 있다. 모두 본받아야 하겠으나, 그중에도 외적과 싸워 죽음으로 나라를 구하고 민족의 혼을 이어 되살린 충절이야 말로 으뜸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백상루-충민사-불천위사당 충장사 제향의 의미와 양세충신 정여문 에 새겨진 깊은 뜻을 온국민이 그뜻을 되새겨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충장사에서는 순국일 1월 21일에는 후손들이 불천위 제향을 하고 탄신일에는 남이흥 장군 문화축제를 한다.
남이흥 장군 문화단체에서는 충민사에 위패 봉안된 후손분들과 문화단체가 백상루와 충민사를 방문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