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의 어느 새벽, 봄의 향내가 가시고 푸릇한 냄새를 풍기며 조용한 밤공기가 여름을 향해 뜀박질을 하던 그때, 내 심장 또한 무언가를 향해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나는 현재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기도 전인, 2012년 1월 1일 전날 밤 일출을 보러 갔다가 기숙사 합격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새해의 시작을 여기 이 기숙사에서 맞았다. 낯선 친구들, 소심한 내 성격, 부모님과 처음 떨어져보는 생활, 무서운 사감 선생님…. 그 모든 것들이 매일 밤마다 나를 등 돌리고 누워서 눈물로 베개를 적시게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친한 친구들도 생기고 기숙사 생활에 점차 적응을 해 나가고 있을 때였다.
등교를 하다 기숙사 현관문에 붙어있는 검은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 포스터엔 ‘죽은 계고인들의 사회’라고 큼직하게 적혀있고, 그 밑에는 시나 소설, 또는 수필을 창작하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아리라고 소개돼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 포스터가 기숙사 동아리 홍보 포스터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포스터를 보고 나는 뭔지 모를 설렘과 묘한 흥분을 느꼈다. 평소에 글을 쓰는 것을 즐겨하던 나는 며칠 동안을 고민하다 친구와 함께 그 동아리에 지원을 했다.
일명 ‘죽계사’동아리의 첫 모임이 있던 날, 동아리 사람들은 밤 12시에 기숙사 인터넷 강의실로 모두 모였다. 넓은 공간 그 중심에 칠판 하나가 우뚝 서 있고, 그 앞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다들 자신이 써온 저마다의 작품 공책을 품에 안고 멀뚱멀뚱 서로를 살피고 있을 때, 동아리 회장 오빠가 일어나서 말을 꺼냈다.
죽계사라는 이름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책에서 보면 남학생들이 늦은 새벽 동굴에 모여서 자기가 쓴 시를 서로 발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그 책의 이름을 빌려온 것이고, 우리 기숙사의 이름이 계고관이라 그 책의 이름을 살짝 바꿔 시인 대신 계고인을 채워놓은 것이었다. 설명을 듣고 나니 동아리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회장 오빠는 칠판에 자기가 써 온 시를 적기 시작했다. 적은 시를 낭송하고 시에 대해 설명을 했는데 듣고 있던 우리는 저절로 박수를 치고 감탄했다.
시도 정말 훌륭했지만, 우리들이 모여 이렇게 진지하게 시를 발표하고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매우 감동스럽고 뭉클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태까지 혼자 글을 써왔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공감할 기회가 없어서 죽계사를 했던 그 첫날밤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여운이 남는다. 여러 명이 발표를 끝내고 내 차례가 돌아와서, 떨리는 손으로 펜을 꼭 붙잡고 칠판에 시를 옮겨 적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처음으로 내 글을 발표했던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짜릿했다.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내가 쓴 글에 내 작품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던 그 순간엔 무언가가 가슴에 흠뻑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떨림이 시동을 걸고, 동아리 사람들의 조언과 격려가 엑셀을 밟아 나는 지금의 꿈을 가지게 되었고 그걸 향해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다. 작가라면 무슨 작가든지 다 해보고 싶어서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작가가 될 것인지 정하진 못했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요즘 사람들이 바쁘게 삶을 살아가다가 소중한 것을 지나치곤 하는데, 그 소중한 것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죽계사를 하면서 여러 편의 시와 소설을 쓰고, 또 여러 편의 시와 소설을 읽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내 작품에 내 이름표도 붙일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경험을 하면서 차근차근히 쌓여진 생각과 꿈이 앞에서 말했던 것들이다.
그렇게 나는 죽계사 활동에 점점 빠져들었고, 가을이 왔다. 가을은 슬슬 학교 교지를 만들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동아리 회장 오빠는 우리가 그동안 쓴 작품들을 모아서 그중에 잘 쓴 작품 세네가지 정도를 골라 교지에 넣어보는 건 어떨지 제안을 했다. 당연히 우리는 오케이를 했고, 그동안 썼던 작품들을 모두 모아 학교 국어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선생님께서 교지에 올릴 시 네 편을 선정해주셨는데, 그중엔 내가 쓴 시도 있었다. 그 시들은 학교 교지를 만드는 동아리로 보내졌고, 그 해 겨울 정말 학교 교지엔 내 시가 떡하니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지금 ‘죽은 계고인들의 사회’에서 회장을 맡게 되었다.
소심하고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성격 때문에 걱정도 많이 되었다. 이렇게 멋있는 동아리를 내가 맡아서 잘 이끌 수 있을지 부담이 됐지만, 내가 죽계사를 좋아하는 만큼 영광스런 자리라고 생각하고 한 번 해볼 생각이다. 죽계사의 회장으로써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전에, 고된 수험 생활에 지친 친구들과 동생들에게 죽계사가 하나의 쉼터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친구들도 죽계사를 통해 공부하느라 잊고 있던 저마다의 꿈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동아리를 잘 이끌어나가기로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