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저 위쪽에서 한 남자가 터덜터덜 걸어내려왔다. 주근깨의 남편이었다. 왜소한 체구에 거무퇴퇴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그래서 첫눈에 봐도 게으름이 덕지덕지한 그는 담배를 피워문 채 주근깨가 뒷정리하는 것을 멀건히 지켜보고 있다가 나중에야 물건 함지를 나꿔채듯 빼앗아 들고 앞서 올라갔다.
“먼저 들어갈께요.”
주근깨는 남편의 그러한 모습이 자신의 죄이기라도 한 양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뒤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근깨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망연히 지켜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았다.
왜 지금 이 순간에 어젯밤의 그 주근깨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빨간셔츠와 또한 어젯밤에 보았던 땡중의 모습 위로 그 주근깨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지고 있었다.
빨간셔츠는 점심무렵이 지나 우리가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의 뒷산에나 올라가 보자고 해풍장을 나설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내일이면 배가 뜨겠지, 내일이면..., 하던 사람들도 태풍이 오고 있다는 소식에 이제는 모두들 낙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쯤에서는 내 여자도 불란서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 여자는 즉흥적인 구석을 가지고 있어 종종 엉뚱한 일을 저지르곤 하지만, 아무리 아쉽더라도 안되는 것에 미련을 갖고 지나간 일에 후회를 하거나 누구에게 원망을 하는 그런 여자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꽤 현명한 여자라고 할 수가 있을 거였다. 이 삼일 동안 남해안을 돌자고 나섰던 길에 즉흥적으로 먼저 홍도에 들어가 보자고 한 것도 자신이었으므로 누구를 원망하고 말고 할 것도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수십번도 더 지나다녔던 길을 왔다갔다 했고, 비오는 날 농부가 방바닥에 엎드려 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멀건한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302호 아줌마들은 달랐다. 그네들에게는 태풍이 오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얼마나 더 발이 묶이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안중에 없었다. 오직 빨간셔츠에 대한 걱정 뿐이었다. 빨간셔츠가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간 것이 분명하다고, 어떻게 자기네들끼리만 돌아갈 수 있으며 또한 돌아가서는 뭐라 말할 수 있느냐고 울상들이었다.
나는 그네들에게 빨간셔츠가 돌아올 테니 걱정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 이야기를 꺼내야 될지 난감하고도 망설여졌을 뿐만 아니라 내 여자나 처남네도 모르는 척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이야기하지 말자 했던 것이다.
전교생이 40여명이라는, 생각보다는 많은 숫자의 학생을 가지고 있고 또한 땅콩껍질 모양을 하고 있는 섬의 허리부분에 오두마니 올라앉아 있는 초등분교의 조그만 운동장을 가로질러 산으로 몇 발짝 올라서자 양편 바다가 모두 보였다. 그곳은 출입금지구역이었다. 출입금지 푯말이 서 있었고 이따금씩 사람이 올라가면 어떻게 보는 것인지 내려와 달라는 확성기 방송이 들리곤 했다.
우리는 출입금지 푯말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아 올라오는 길에 수퍼에서 사가지고 온 캔커피를 마셨다. 양쪽 바다는 대조적이었다. 선착장 쪽의 바다는 여전히 파도가 일렁이고 있는 반면 해수욕장 쪽의 바다는 거짓말처럼 잔잔했고 두어 척의 배가 그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바다의 저편 바깥쪽으로 못보던 배들이 열 척 넘게 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화물선인지 어선인지 구분이 안되는 그 배들은 시커멓고도 왠지 우중충하기만 했는데 그 우중충한 모습과는 달리 질서정연하게 일렬횡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군함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무슨 배일까. 무슨 배일까, 하다가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자고 일어섰다. 사실, 그곳에 더이상 앉아 있기도 무료한 데다가 그 배들이 어떤 배인지 궁금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매일 똑같은 것들만 보아온 터에 그것은 유일한 변화로써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아니, 그렇게라도 궁금한 척 하고 관심권으로 끌어들여 이 진력나는 시간들을 메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큰 어선이라거니 함정이라거니 해가며 내기를 걸고 낄낄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