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 자의 인생관과 가치관, 세계관에 의해서 달라질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가치 혼돈의 시대에 과연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거니와 그 답도 지극히 현실적인 면을 고려해 찾기 마련이다. 본고에서는 우리 자녀들이 미래에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더불어 살아가기를 기대하면서 현재 우리 기성세대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조명해 보고자 한다.
톨스토이는 <인생론>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현재’ 상황에 대해 우리들은 얼마나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을까? 우리 민족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현실에 우리들은 얼마나 아파하고 고민하는가? 세계열강들의 각축장으로 주변부에 자리하고 있는 나라의 처지에 대해 보다 넓은 안목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가?
오늘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우리들은 얼마나 공감하고 있단 말인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우리들은 얼마나 자긍심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혹여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 국가적으로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내 삶의 틀을 넘어 이웃과 인류에게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등의 질문에 대해 그 누가 당당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해 신분적으로 안정된 계층으로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여겨졌듯, 오늘날에는 중산층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기를 대부분 희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의 중산층의 개념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인생의 행복 측면에서 볼 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중형차 소유, 현금 1억 원 이상 보유, 해외여행 1년에 1회 이상, 부채 없는 30평 이상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들’을 중산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반면에 나라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의 중산층의 공통점은 ‘불의를 보고 일어설 줄 알아야 하며, 약자를 돌보고 강자에 대응하고,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져야 하며, 자신의 정신이 건강하고 정의로워야 진정한 중산층’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페어플레이’, 프랑스에서는 ‘악기를 다룰 줄 알고,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을 중산층의 덕목으로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중산층을 꿈꾸고 있을까? 혹여 나와 내 가족만의 호의호식을 잘사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효부 밑에 효자 난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자 본보기다. 우리 부모와 기성세대의 살아가는 모습들은 그대로 자녀들과 미래세대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나는 현재 자녀들에게 얼마나 당당하고 떳떳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자아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세상에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면서도 자선과 봉사를 베푸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내 주위에도 부부가 성실하게 일하면서 마음이 맞는 몇 가정이 모여 그 자녀들과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소중한 친구가 있다. 친구지간이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아주 가까이에 ‘세 모녀 동반자살’과 같이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있는 분들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며 따스한 새봄을 맞이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