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문화제 주부백일장 산문부문 금상 수상작
추수의 문턱에서
표 순 식 (합덕읍 운산리 교동)
들판의 벼들이 누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예당평야의 황금벌판은 농부들의 손길을 기다리며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다. 그야말로 풍년을 노래하려는 우리 농부님들께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불청객 태풍 ‘사오마이’가 지나간 자리, 그로인해 깊게 패인 우리 농부님들의 주름은 한줄 더 늘고 깊게 한숨 쉬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없는 건 내가 이 고장에 살을 섞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느날 토요일 오후, 모처럼 아이들을 집에 남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밖에 나갔다. 코끝으로 들어오는 낯익은 냄새를 맡으며 “어! 이게 무슨 냄새지?” 옆에 계시던 아줌마 말씀이 “그거 밤꽃 냄새잖아” 하신다. “밤꽃냄새구나. 언제 밤꽃이 피었네” “핀지가 언젠데 그래”
내가 너무 무신경한 건가. 밤꽃이 피었는지 밤꽃냄새조차도 잊었으니 말이다. 냄새가 나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건 정말 밤나무에서 나는 밤꽃 냄새였다. 길쭉하게 뻗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밤꽃송이들.
어린시절 집앞에 큰 밤나무가 두서너 그루 있어 수없이 냄새를 맡으며 자라온 내가 그 냄새를 잊을 정도로 무엇에 묻혀서 사느라 그 독특한 향을 잊고 살았단 말인가.
초등학교 4학년 큰 딸이 가끔은 퉁명스럽게 질문을 한다. “엄마, 난 왜 이렇게 동생들이 많아요. 친구들은 혼자이든지 동생이 한명 뿐인데요” 그럴 때면 난 딸아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 열심히 설명을 한다. 그러나 딸아이 말도 맞다. 핵가족이라 하여 단촐하기 그지없는 요즈음 하나 둘도 아니고 넷이나 되니 말이다.
세번째 아이를 갖고 산부인과에 갔더니 간호사가 하는 말이 요즈음 세상에 세번째가 왠 말이냐며 놀라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막내아이가 이제 겨우 6개월, 난 그렇게 아이들 속에 묻혀 살다보니 밖에 나갈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이곳 소들공원 주변에 수없이 많은 밤나무꽃 냄새조차 모르며 살아온 것이 당연한 일이리라.
이 밤꽃송이들을 조금 지나면 언제 길쭉한 꽃송이었느냐는 듯이 동그란 가시송이로 자라고 작은 알갱이를 품어 간직했다가 굵고 실하며 단단한 열매를 맺어 입을 딱 벌리고 있겠지. 한알 두알 보기좋게 영글어 준 후 가시껍질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나무의 밑거름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잊혀지겠지.
우리 인생도 살아가는 모습이 이렇듯 생물이나 미생물이나 마찬가지인 듯 싶다. 내 자신은 어떻게 되든지 자식을 위해 한평생을 살다가 소리없이 가는 것을 자신의 몫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하셨듯이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이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다. 자녀들이 그 마음을 알든 말든 상관없이 우리 부모님네들은 모두가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나이 마흔의 문턱을 두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아직은 뒤를 돌아다 보아도 앞을 내다 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나에겐 다른 사람과 다르게 네명의 자녀가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기 대문에 그 아이들을 보면서 난 지치지 않고 열심히 살아야 할 용기와 의무가 있다. 그 아이들은 나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바라는 대로 아이들은 커주지 않는다. 나 역시 네명의 아이들이 다 훌륭하게 자라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얼마만큼 정성을 들여가며 영양을 주고 기르다 보면 한톨 한톨 잘 여문 알밤처럼 만들어질 거란 생각을 한다.
복받은 땅 이곳, 예당평야의 정기를 받고 난 예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곳 사정과 이곳 사람들의 끈끈한 정, 이웃사촌이라 할 만큼 인정미 넘치는 이웃간의 사랑, 어디 그 뿐인가. 효도로도 유명한 면천 기념물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복지겸의 딸의 효심과 당진 대호지면에 남이흥장군을 비롯하여 예산의 추사고택 등 문화유적지가 많은 이곳은 우리 자녀들이 보고 자라는데 좋은 본보기가 되어지는 고장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태풍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실의에 빠지곤 했지만 우리지역 사람들은 언제 그러했냐는 듯 한숨 한번 크게 쉬고 다시 신발끈 질끈 묶고 논으로 나가 추수를 하시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친정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내가 느끼듯이 우리 자녀들도 그러하리라.
태풍이 지나간 다음은 참으로 잔잔하고 평온한 청명한 날씨였다. 가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고 했던가. 이제 완연한 가을로 성큼 다가선 날씨, 초등학교 운동회에 갔었다. 학교대표 달라기를 하는데 옛 기억을 되살려 목이 터져라 모교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마음은 어린시절 그대로인 자신을 보았다.
이제는 나이탓을 하기 보다는 내 주어진 삶에 충실하는데 중점을 두어야겠다. 매일 아침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에 한번쯤은 하늘을 쳐다보고 넒은 바다를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일주일에 몇시간쯤은 아이들의 품을 떠나 한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리라. 한가지쯤 취미생활을 하면서 한달에 한번쯤은 지나온 날들을 반성하는 시간도 가져야지. 미래에 대한 설계도 하면서 살아가리라. 나이 먹는 수를 세면서 한숨을 토하는 것보다 이러한 것들이 어쩌면 내가 꿈꾸는 실하고 단단한 알밤을 만드는데 필요한 밑거름으로 제공되어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한 농부의 몫이 아닐까.
상록문화제 백일장을 통해 38년만에 나의 글을 밖으로 표현할 기회를 주심을 감사하며 그 계기를 발판으로 서서히 시작하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