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람에게 시련은 찾아온다. 하지만 그 시련을 어떻게 딛고 일어서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달라지게 한다.
새마을지도자 대호지면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한충기(대호지면 조금리·58) 씨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견디고 다시 일어선 사람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늘 웃음 가득한 그의 얼굴은 마냥 인심 좋은 시골 아저씨 인상이다.
11년 전 그는 사업실패로 크게 어려움을 겪었다. 대규모 미곡처리장을 운영하던 그는 IMF의 여파로 많은 것을 잃었다. 살고 있는 집 빼고는 모든 재산이 경매에 넘어갈 정도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조금리에서 꽤나 잘 살았던 대농의 아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배웠고, 대호만이 가로 막히기 전에는 인근에서 굴 양식장을 운영했다. 결혼을 한 후에는 5명의 딸과 막내아들을 낳아 다복하게 지냈다. 하지만 어느 날 시련이 불어 닥쳤다.
“다 잃은 그 상황에서 무슨 수로 버텼겠어요. 가족 생각밖엔 없었죠.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를 만큼 오로지 가족을 위해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면서 일을 했어요.”
힘든 시절 함께 해준 사람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다. 아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처남의 도움을 받아 왕겨판매업으로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일이 자리 잡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그는 새마을지도자 등 여러 사회봉사활동을 놓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움츠러들고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았고, 지역에서 봉사를 하다보면 일 할 시간을 뺏기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잠을 덜 자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활동을 그만두지 않았다.
4H클럽·청년회·농업경영인회를 비롯해 그는 지금까지도 새마을지도자 활동과 의용소방대원·주민자치위원 등 지역의 웬만한 사회단체 활동을 두루 하고 있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건 한 씨의 몫이었지만 외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사는 그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에게서 힘과 용기를 얻었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항상 좋은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었다.
한충기 씨는 “힘든 시절도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견뎌 낼 수 있었다”며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고 말했다.
잘 자란 6남매 “가장 큰 행복”
그 중에서도 가장 고마운 건 당연히 가족이다. 그의 어려움을 묵묵히 함께 해준 아내(김명희)와 바르고 착하게 자란 여섯 아이들(인숙·지연·유리·주연·지윤·관웅)은 그에겐 축복에 가깝다. 아내는 불평불만 한 마디 없이 남편의 일과 사회활동을 도왔고, 가족을 뒷바라지 했다. 아이들은 구김 없이 자라 어느덧 큰 딸은 시집을 갔고 막내아들은 고3이 됐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을 때도 아들처럼 믿어준 처가식구들에겐 어쩐지 고마우면서 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일일이 말하지 못했어도 가만히 떠올리면 고마운 얼굴들이 끝없이 머릿속에 떠오른단다.
“우리 마누라, 자식들, 처남, 장모님, 차택순 이장님, 박수열 면부녀회장, 이웃들, 동지들… 아이고 너무 많네.”
어려운 시기를 지나며 그는 물질적인 것을 잃었지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진짜 사랑’과 ‘사람’을 얻었다. 삶의 감사함을 배웠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뒀지, 6남매는 잘 자랐지, 더 큰 성공이 어디 있겠어요. 이것보다 더 소중한 재산이 없지. 난 부자에요, 부자. 허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