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랐다. 공부한답시고 부모님을 많이 도와드리지는 못했지만, 뙤약볕 아래 고구마밭 김매기나 맞바람 맞아 가며 농약을 살포하던 일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가장 힘든 농사일 세 가지를 꼽으라면, 손으로 모심기(힘들어 머뭇거리다 보면 못줄이 튀어 어느새 흙탕물 범벅), 보리타작(옷 속으로 들어간 보리 터럭이 어찌나 가렵고 따갑던지), 한여름 비닐하우스 속에서 고추 따기(지독한 사우나)가 아니었나 싶다. 대학생이 돼 철이 들면서 주말이나 방학 때에는 농사일을 제법 도와드리곤 했지만, 그 때는 이미 상당부분 기계화가 진척돼 할 일이 많이 줄어 있었다.
경찰교육원의 관사 옆에 작은 텃밭이 있어서 지난 봄 오이·수박·참외·방울토마토·가지·상추·고추·옥수수·호박을 심었다. 어깨 너머로 익힌 솜씨지만, 출근 전에 잡초도 제거하고, 때맞춰 거름과 물도 주고, 알맞게 순도 집어줬더니 비교적 잘 자랐고 열매도 제법 열렸다.
문제는 수박의 수확 시기였다. 외형상 많이 자라기는 한 것 같은데 다 익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결과 손으로 두드려봐야 한다느니, 수박 배꼽이 들어가야 한다느니 이런 저런 설명이 많았지만,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수박농사를 짓는 고향 선배에게 직접 확인을 부탁했더니 정확하게 수확시기를 알려 주셨다. 농사일도 경험이 축적된 전문가라야 제대로 해낼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됐다.
6월초부터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서 직원들에게 직접 수확한 농작물을 나눠주기도 하고, 오이와 고추는 아침식사 때 구내식당에 가져와 함께 먹기도 했다.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 안 되지만, 정성들여 재배한 채소라 그런지 정을 나누는 느낌이었다. 나름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땀 흘린 탓이었을까. 텃밭의 채소가 그냥 마트 진열대에 전시된 상품과는 달리 보였다. 손수 재배하면서 자연이 전해주는 귀한 선물임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됐다.
올해는 오랜 가뭄에도 불구하고 양파·마늘·감자·수박 등 많은 농산물의 생산량이 증가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데 농민들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다. 게다가 내년부터 쌀을 관세화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 이후 쌀값 하락이 우려되는 가운데, 연내 타결될 것으로 전망되는 한중 FTA는 농가의 또 다른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물론 정부가 안정적 쌀 생산기반을 유지하고, 농업의 경쟁력도 획기적으로 제고해 농가소득을 안정시키겠다는 종합 대책을 함께 발표한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농촌인구의 고령화와 함께 농촌경제의 어려움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예전에 수십 가구가 살던 마을이 대여섯 가구만 남은 곳이 있는가 하면, 주민 전체가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인 마을도 생겨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22%에 불과하다. 1980년 이후 2013년까지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이 약 20배 늘어난데 비해 농가소득은 13배에 그쳤고, 같은 기간 농가부채는 81배나 늘어났다. 농가의 농업소득율도 2010년 37%에서 2013년 32.7%로 해마다 낮아졌고, 전업농가의 소득증가율도 지난 33년간 연평균 1.4%로 미미하기만 하다.
나라의 생명산업이자 안보산업이라고 불리는 농업이 살아나려면 무엇보다 농촌이 살아나야 한다. 우리의 농촌과 농업인들이 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해야만 농업이 각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부와 농민단체, 농업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농촌의 풍요롭고 밝은 미래를 가꿔 가는데 힘을 합쳐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