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아는 것도 많고, 자기주장도 센 반면, 좀처럼 양보는 없다. 도무지 자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세상이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기본에 충실하며 원칙을 지키며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자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틀림없이 바보다. 우직하게 법을 지켜가며 살려고 하는 자 역시도 세상 눈으로 보면 그 역시 바보다.

사람들이 영악해져서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기가 힘들어진 세상 아닌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개인의 유·불리를 따지고 사적인 인기나 관계 유지에 급급해 살지만 바보스런 사람들은 계산하지 아니하고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며 살아가려하기 때문에 난 바보가 많아야 세상 살맛이 난다고 외치는 자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있었던 일이다. 난 2010년부터 정치를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처음으로 기호 4번 무소속으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던 선거라 남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유권자들은 당진시장 후보인 필자에게는 반드시 사조직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조직의 실체여부를 자주 묻곤 했다. 그 때마다 나는 사조직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 정치인에게는 조직은 사활의 문제다. 특히 재·보선이 아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지방선거에서의 정당을 가진 기초단체장 후보의 경우는 소속 정당의 지지는 물론 예비후보 등록일부터 같은 당의 기초의원, 도의원 후보 등 각급 선거 후보자와 자연스럽게 연대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선거운동을 한다. 이들은 같은 색, 같은 기호가 새겨진 옷을 입고 찬란하게 현장을 누빌 때는 마치 잘 훈련된 소대 또는 중대 병력이 움직이는 인상을 준다.

반면에 무소속 후보자는 항상 홀로 고독한 선거운동을 한다. 설상가상으로 선거일에 임박해 추첨으로 기호를 부여받고 나면,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기호를 알릴 새도 없이 투표장에 가야 한다. 이유는 신문사, 방송국, 연구소, 단체 등에서 시장후보 정책토론회에 너무나 자주 불려 다니느라고 선거운동원을 대동하고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 따라서 기호를 넣고 새긴 명함의 대부분은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거의 전부 용도폐기 해야 한다.

이러한 불공정한 선거 전개 양상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법에서 사조직은 허용이 안 된다고 해, 이를 끝까지 지켜가며 나 홀로 정직하게 선거에 임하려는 무소속 후보자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바보다.

성경에도 바보들의 이야기가 있다. 대표적인 바보가 구약성경 창세기 26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다. 사막지대인 중동에서 우물은 생명줄이다. 하지만 모래벌판 한 가운데서 물길을 잡기도 어렵거니와 물줄기를 잡았다 하더라도 무너져 내리는 모래로 인해 우물을 완성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때, 이삭은 무려 7개나 거듭 우물을 팠다. 판 우물을 불량한 이웃이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웃이 뺏으려할 때마다 이삭은 조용히 양보하고 물러서기를 거듭해 결국 7개의 우물을 파게 된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이삭이 판 우물을 자기 것이라 억지 주장을 할 때마다 이삭은 조용히 물러섰다. 그리고 다른 골짜기로 가서 다시 우물 파기에 온 힘을 다 했다. 그는 바보 이삭으로 살았다. 하지만 우물 파기에 열심이던 이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우물 빼앗기에 열중했던 사람들은 재난과 고난의 삶이 계속 이어졌다.

하나님은 바보처럼 사는 이삭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결국은 바보같이 살았던 이삭이 승리했다. 우물을 빼앗았던 사람들은 당시 누가 봐도 똑똑한 삶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결국 불행하게 살았고, 거듭 우물을 빼앗겼던 이삭은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이쯤 되면, 우리 모두 바보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