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학교 교지편집부 지도교사를 할 때, 편집 회의에서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의 외래어 남용과 학생들의 비속어 사용 실태에 대한 기획 기사를 주문해 보았다. 다양한 방법의 의견이 나왔고, 일상의 외래어 실태는 시내 상점들의 상호를 통해 정리하고, 학생 비속어는 설문지를 통해 자료를 수집해 보기로 했다.
조사 결과 학생들의 비속어 사용은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였고, 상점들의 이름도 우리말을 잃은 지 오래였다. 결국 학생들의 비속어는 그 말의 어원을 밝혀 부끄러움을 유도해 보자는 쪽으로 글을 썼고, 외래어 상호에 대해서도 사용 비율을 공개해 우리의 언어 사용 실태를 반성해 보고자 했다.
교지가 출간되고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학생들은 그간 자신들이 쓴 말의 의미도 모르고 사용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드러낸 반면, 지역 상인 한 분은 본인 상점의 외국어 간판이 사진으로 실렸다며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는 항의성 전화를 걸어왔다. 일개 학교 교지에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하자는 기사의 집필 목적이 불순하면 얼마나 불순했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그분의 상상력이 대단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2년 전, 우리는 다시 시내 간판과 전단지, 음식점 차림표, 각종 표지판 등에 잘못 표기된 우리말 실태를 조사해 학교에서 작은 ‘사진전’을 열었다. 역시 8년 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심지어는 관공서에서 만든 안내판조차 맞춤법에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견됐다.
어느 순간부터 일상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세계화’의 기준이 됐다. 그것이 세계 시장에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한국담배인삼공사’를 ‘KT&G’로 바꾼 것은 우리나라 담배와 인삼을 외국에 더 많이 팔기 위함일 것이라 믿겠다. ‘국민은행’과 ‘기업은행’이 각각 ‘KB’와 ‘IBK’로 바뀐 것도 외국 자본을 많이 끌어들이기 위함이라 믿겠다. 농민들의 은행이라는 ‘농협’을 ‘NH’로 바꾼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까?
우리 역사 속에서 중국에 대한 정치 사대주의는 한자어에 대한 언어 사대주의를 불러와서 지금도 고유어 보다는 한자어를 더 높임의 의미로 사용하거나 고급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젠 한자어도 서양 경제력에 밀려나서 영어가 가장 세련된 말이 돼버렸다.
간판에는 영어가 쓰여야 장사가 좀 되나 싶고, 소위 아이돌 가수라면 영어 가사가 듬뿍 담긴 노래쯤은 불러줘야 인정받는 세상이 됐다. 우리네 인식이 어느새 순우리말로 된 한글 간판에서 시골의 ‘향토성’을 느끼고, 영어 단어가 빠진 노랫말에서는 ‘순수함’을 느끼는 시대를 살고 있다.
외래어나 외국어가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상은 절대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 언어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확보해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넘치는 부분에 대해 우려한다. 한 쪽이 넘치다 보면 다른 쪽을 잊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유산이 소멸의 과정을 걸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말 이름의 등산복을 입고 우리말 간판으로 된 빵집에서 빵을 사서 우리말 이름의 자동차를 타고 산에 가는 것이 더 이상 ‘촌스럽지’ 않은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때 묻지 않은 ‘내일’에게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훈민정음’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