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 지수가 OECD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최하위권이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또한 얼마 전에는 국민들이 어렵고 힘들 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응답도 대한민국이 최하위권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시편을 쓴 기자는 큰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주변에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왜 자신을 버렸냐고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시편 기자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수준 높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해주시고 동행해 주신다면 지금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시편 43편 5절에서는 낙심하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책망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안 좋으니 낙심할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낙심하는 것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눅 18:1).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갈 6:9). 또 시편 기자는 불안해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향해서도 책망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들로 둘러싸여 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불안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결여에서 나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안해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시편 기자는 자책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향해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 도와주신다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십니다(창 18:14).
저는 1977년 신학생 시절에 전신 마비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2개월 여를 목 위만 빼고 전신을 움직일 수가 전혀 없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신흥동에 있는 대순진리회 교인인 이모 집에서 눈치를 먹으며 지냈습니다. 강원도에 있는 동생이 부모님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을 극구 반대를 했습니다. 제가 5남매 중 장남인데다가 부모님의 도움을 한 푼도 받지 아니했어도 부모님에게는 알리기 싫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소망을 줬던 말씀이 시편입니다.
저는 말씀대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불안해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고통에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저는 병원 한 번 가지 않았습니다. 무슨 약 한 번 먹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주경야독 하고 있었기에 돈이 없기도 했습니다. 하루에 한 끼도 먹지 못할 때였지요. 그때 할 수 있는 것은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기도 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 메르스로 인하여 전 국민들의 마음이 불안합니다. 정치, 경제, 국방, 건강 어디 하나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 없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하면 의지하고 기댈 곳이 있고 우리의 행복지수가 높게 올라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상에 증명하는 삶을 사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