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실 이외의 구역 청소는 각 학년별로 분담했는데 고학년은 도랑 담당이었다. 당시 도랑 청소를 맡은 학생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조금은 더러워 보이는 도랑에서 물에 젖은 쓰레기를 치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씩 청소를 하던 학생들이 가재를 잡으면 큰 구경이라도 난 듯이 빙 둘러앉아 재미있게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유년시절의 가재가 새롭게 다가온 것은 산업화로 인한 수질오염으로 전국의 하천이 몸살을 앓을 때 수질 1급수의 청정지역을 나타내는 지표생물로 가재가 제시됐을 때다. 어렸을 때 교실 옆 조금은 더러워 보였던 도랑의 가재가 1급 청정지역 지표종이라니.

하긴 지금도 의외의 장소인, 상당히 오염된 곳으로 보일 법한 터널의 배수로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대부분 1급수인 지하수가 흘러나온 경우라고 한다.

어찌됐든 어렸을 적 우리들이 별로 깨끗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당시의 도랑도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깨끗했던 셈이다. 우리들이 체감할 수 있는 오염정도가 정말 많이도 달라졌다.

어렸을 적 가재를 잡을 수 있었던 도랑을 되살리겠다며 충청남도에서 2013년부터 도랑살리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수질오염과 예산낭비의 사례로 전락한 4대강 사업의 위험성을 미리 경고하며 지류하천인 도랑부터 살리겠다는 사업취지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안희정 도지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도랑살리기 운동의 취지는 충청남도를 거쳐 일선 시군의 사업현장으로 내려오면서 퇴색하기 시작했다. 생활오수와 쓰레기 등의 유입으로 오염된 하천의 수생태계를 복원하겠다고 사업을 시작했으나 실제로는 멀쩡한 마을 도랑에 포클레인을 동원해서 조경사업을 진행했다. 마치 예전의 자연형 하천사업과 생태하천 복원사업 등이 이름 그대로 하천의 오염원을 차단하고 수생태계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보다는 하천 조경사업으로 전락했던 것처럼 도랑살리기 사업은 당초의 목표를 잃어갔다.

충남 도랑살리기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굳이 사업을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 수질 1등급 지역 등을 선정한다는 것이다. 멀쩡히 살아 있는 4대강을 ‘죽었다’며 살리겠다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사업을 진행했던 것처럼 도랑살리기 사업은 첫 선정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전수조사를 통해 우선순위대로 연차적으로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몇몇 담당자들이 특별한 기준도 없이 주관적 판단으로 대상지를 선정하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 전수조사도 했으나 캐비닛에 갇힌 채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도랑 오염의 주원인을 찾아 오염원을 차단하고 생활하수나 오염된 농업용수가 직접 유입되지 않도록 저류지 등의 인공습지 등을 조성해 자연정화를 통해 도랑으로 물이 흘러들어가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함에도 이보다는 포클레인을 동원한 조경공사를 선택했다.

공사업체 선정도 문제다. 충남도 내 대부분의 시군이 각각 특정 조경업체와 수의계약을 하면서 사업의 취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일이 맡겨졌다. 충청남도와 일선 시군의 이해가 이러하니 이 사업을 수탁한 환경단체나 거버넌스 단체도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일부 환경단체 등에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는 있으나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사업을 수탁했던 환경단체나 거버넌스 단체의 책임도 있다. 사업의 취지가 이토록 왜곡되는 상황이라면 말로만 비판하지 말고 수탁을 전면 거부하거나 사업을 반납했어야 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각 시군의 환경단체와 거버넌스 기구는 충청남도와 각 시군이 지금의 도랑살리기 사업을 원래의 취지대로 진행하지 않고 지금의 조경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한다면 수탁을 전면 거부해야 한다.

또한 충청남도는 지금부터라도 관련한 단체, 주민들과 도랑살리기 사업에 대한 중간평가와 토론회 등을 통해 문제점을 인식하고 당초의 취지대로 사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일선의 각 시군은 충청남도가 도비를 내려 보낸다고 무조건 시비나 군비를 붙여 사업을 진행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실효성을 검토해 아니라고 판단되면 도비를 반납해야 한다.

도랑살리기 사업의 충분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각계 주체의 활발한 소통과 토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