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맞이하면서 소회가 예전 같지 않다. 예전의 기억으로는 자의든 타의든 기념식장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삼창을 외치며 옛 선조들의 독립의 열정을 새롭게 새기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 3·1절은 소리 없이 지나가는 느낌이다.
사실 3·1절의 기억은 불편함일 수도 있다. 예전 우리의 선조의 세대가 당했던 억울함과 고난과 아픔을 기억나게 하기 때문에 유쾌한 기억은 될 수 없을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한쪽에서는 예전의 우리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지우려고(?) 애를 쓰고 한쪽에서는 어떻게든 기억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다. 지우려는 쪽이나 기억하려는 쪽이나 살펴보면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지우려는 쪽은 어떻게든 과거의 부끄러움을 감추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요 근래 영화 ‘귀향’과 ‘동주’가 개봉돼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두 영화 모두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던 시절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영화는 우리의 불편한 기억들을 다시 꺼내서 우리가 어디쯤 서있는지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구약성경 신명기 8장 2절을 보면 애굽에서 400년의 종살이를 마치고 40년간 광야생활을 마무리 하고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당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 “[개역개정]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사실 힘들고 힘없고 아팠던 시절을 회상하며 즐거워 할 사람이 누가 있냐마는 하나님은 자유를얻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예전 애굽에서의 종살이 했던 시절과 광야의 연단의 시간들을 기억하라고 당부하신다. 아픔의 기억들을 다시 한 번 꺼내보고 기억하고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과거의 여정을 통해서 깨닫게 해주고 있다.
고통은 그 자체로 힘을 지닌다. 사람이 본질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철저하게 알게 해준다. 인간에게 주어진 고통과 슬픔이 자만심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버티기 힘든 고통을 겪다보면 사람이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는 살 수 없는 자기의 한계를 직시하게 된다.
지금은 교회력 상으로 보면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억하며 경건한 신앙자세를 가다듬는 절기로 성회수요일(10일)부터 부활주일까지 40일 동안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다. 이 사순절기에는 늘 예수님의 짧았던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서 늘 불편함을 감내하며 사신 그 삶의 궤적들을 묵상할 때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하여 돌아보게 된다.
아마도 오늘 한국교회에 가장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돌아봄’, ‘성찰하는 신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엇이든 너무 쉽게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럴 때 일수록 돌아봄이 필요하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지우고 싶던 기억이든, 아픔이든 기쁨이든 돌아보면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고 내가 서있는 자리가 어디쯤인지 알게 된다.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윤동주 시인의 고백처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눈을 와짝 뜨고’ 걸어가는 삶이 되길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