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의 제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가 무시되고 인권을 보호해야할 국가의 의무가 방기되는 곳이 있다. 그 현장이 바로 지방자치단체에서 국가사무가 진행되는 지점이다. 전력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 가축사육수가 가장 많은 곳이 당진시며 이런 당진시의 시장직을 수행하며 중앙정부의 무모함에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무능함에 분노가 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국가사무라는 법의 잣대를 용감하게 들이대면서도 축산행정과 환경행정의 괴리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문제에 대해서는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권한은 없고 의무만 무성한 자치단체는 재정이나 인력 등 무엇하나 지역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도로하나를 개설하려해도, 인력충원을 하려해도 중앙정부에게 아부해야 하고 허가를 얻어야 한다.

지방에서 자치와 분권을 주장하면 중앙에서는 “너희들이 그런 능력이 있느냐”라며 중앙집권적 국정운영방식이 자치단체의 무능함에 기인한다고 코방귀를 뀐다. 지방은 국정운영의 파트너가 아닌 통치의 대상이며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아니라 예산낭비와 불편을 초래하는 제도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주권재민의 헌법정신을 지켜야 하는 중앙정부는 송전선로의 설치가 국가사무라는 이유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밀어붙이고, 주민의 권리를 지키려는 지방정부가 저항하면 소송도 불사한다. 또한 기관들을 동원하여 푼돈을 쥐어주며 지역주민을 이간질시키고 시청에 압력을 행사하도록 동원도 한다.

향후 50년, 100년 후 당진의 미래상을 그려볼 때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송전선로는 당진의 발전을 막는 가장 큰 장애가 될 것이며, 지역 전체에 촘촘히 박혀있는 송전탑으로 인해 불균형적인 도시로 변화할 것이 우려된다. 송전선로, 발전소, 변환소의 추가건설에 대한 우리의 싸움은 현재를 살고 있는 시민들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함은 물론 당진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당진시에 대한 중앙정부의 횡포는 시민의 기본권을 박탈함은 물론 앞으로 당진에서 살아갈 우리 후세들의 미래마저 망가뜨리고 있다.

지방의 입장을 대변하고 지방자치 수호와 확장을 위해 힘써야 하는 행정자치부가 자치단체 사이에서 상생과 협력이 관계정립이 아닌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상황은 중앙정부의 무모함과 무능함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되어 시행되던 초기에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구호가 있었다. 이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자치와 분권이 이루어져야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영토적인 면에서 국가균형발전이 이루어져야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제헌헌법과 민주화항쟁으로 개정된 헌법은 완전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유예하고 있다. 이제 6월 헌법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시대정신을 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중앙집권화된 정부는 전쟁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하기에는 적절할지 몰라도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의 이해와 요구를 조정하고 수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게 법제도가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다보니 사회적 갈등이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책임을 지방으로 떠넘기고 지방정부의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목마른 자가 샘 판다’라는 옛 속담이 있듯이 지방의 권리는 지방 스스로 지켜야 한다. 분권과 자치의 실현은 권력의 이동이 필수적이다. 권력의 이동은 민주주의의 역사에 있어 투쟁과 희생없이 불가능 한 것이다. 지금 당진은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당진의 미래를 지키고 우리 후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가야 한다. 당진시의 문제는 당진시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고 또 주인으로서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자치역량의 강화만이 중앙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지킬 수 있고 이런 역량들이 모아질 때 그동안 유예된 헌법의 자치권도 쟁취할 수 있다. 당진시와 시민은 지금 자치와 분권의 혹독한 교육과 훈련의 중간에 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겨내느냐 중도 포기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다.